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5년 11월11일 민주노총 공식 출범

한국은 노동조합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기업 경영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노조와 기업의 입장은 줄곧 평행선을 그려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업보다 노조가 역대 정권의 탄압을 받고, 불법단체로 낙인찍혀 왔다는 점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만 봐도 노조 결성은 노동자들이 “목을 내놓을(해고당할) 각오로 해야 하는” 일이다.

해방 이후 두 개의 노조가 설립됐다. 좌파계열의 노동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1945년 11월 결성됐고, 우파계열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1946년 3월 출범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전평은 불법단체로 간주돼 1950년 강제해산됐다.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보다는 친정부 활동에 주력하던 대한노총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해산됐으나 그해 8월31일 산업별 노조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으로 재조직됐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은 노동운동에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1985년 6월 구로공단 노동조합들이 연대해 벌인 구로동맹파업은 44명의 구속자와 1000명이 넘는 해고자를 양산한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구로동맹파업 이후 노동자들은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했으나 전두환 정권은 반국가단체로 몰아 노조원들을 구속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친 뒤 노조를 결성하는 사업장이 크게 늘었다. 1990년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창립대회를 열어 단병호씨를 초대위원장으로 선출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는 노동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전노협은 산업별 노조 건설을 위해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결성한다. 경향신문 1995년 11월11일자 23면에는 ‘민노총 공식 출범’ 기사가 실렸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민주노총은 연세대 대강당에서 4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활동에 들어간다”며 “민주노총에는 861개 노조, 39만5000여명의 노조원이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노총만을 합법적 상급노조로 인정해오던 김영삼 정부는 민주노총을 불법단체로 간주하며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1996년 당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은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맞섰다. 정부는 이듬해인 1997년 ‘제3자 개입금지’ ‘복수 상급단체 금지’ 등 관련 노동법 조항을 폐지했고, 민주노총은 합법적인 조직이 됐다.

민주노총은 오는 11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스무 살 성년이 된 민주노총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탄압’ ‘해고’ ‘파업’ ‘투쟁’ ‘구속’ 등과 같은 단어와 짝을 이뤄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기간에 “내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미국 노동자의 결사 및 단체협상권이 거부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장 편안한 신발로 바꿔 신고, 노동자들과 함께 피켓라인에 서겠다”고 했다. 그런 대통령이 한국에 있었다면 민주노총이 20년간 걸어온 길이 그토록 험난했을까.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