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77년 9월15일 대기업들 ‘대졸자 초임 담합’

4년제 대학졸업자 초임이 일본보다 높던 시절 이야기다. 1977년 9월 중순 삼성물산, 대우실업, 국제상사, 효성물산, 한일합섬, 반도상사, 삼화, 쌍용, 선경, 금호실업, 고려무역 등 국내 대표적인 종합무역상사 대표들이 무역회관에 모였다. 상공부 차관도 배석했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종합무역상사협의회가 결정한 한도 안에서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이른바 ‘임금카르텔’이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향신문은 이 사실을 9월15일자에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그동안 경쟁적으로 임금상승을 주도한 일류 기업들이 종합무역상사를 중심으로 임금상한선제를 결의함으로써 앞으로 임금인상은 이들 기업 이외에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합상사의 대졸자 초임이 얼마나 높았기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이런 수선을 피운 걸까. 기업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월 15만원 선이었다. 당시 환율로 300달러가 넘는 액수였다. 기업들은 일본 대졸자 초임이 7만~8만엔(200달러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서 국내 종합상사 임금수준이 과도하게 높아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를 폈다.

임금을 억제하라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임금카르텔이 앞으로 임금정책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담합이 일반적인 임금수준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적이 염려스럽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당시 대졸자 초임이 고공행진을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출 규모가 커지자 종합상사 덩치가 커졌고, 중화학산업이 본격적으로 확장되자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인재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큰 대학에는 이공계나 경상계열 졸업생을 유치하려는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줄을 섰다. 한때 구인난이 40 대 1에 달했다니 말 다했다. 인재 스카우트전이 과열되고 임금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임금을 무한정 올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임금담합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당시 수출업체들의 인건비 비중은 10%도 안됐다. 명분 약한 담합이 지켜질 리 없었다. 종합상사들은 1978년에도 대졸 초임을 16만원으로 묶기로 비밀리에 결의했다. 하지만 채용 시즌이 되자 여러 업체들이 약속을 깼다. 16만원을 지킨 한 기업에선 신입사원 60여명이 연명서를 작성하고 임금인상 농성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해마다 임금조정 실태를 발표한다. 대졸자 초임도 조사하는데 1980년 처음으로 월 20만원을 넘었다. 1990년 41만원이던 것이 1996년 125만원, 2000년 144만원, 2008년 203만원으로 뛰었다. 지난 25일 발표한 ‘2015년 대졸 초임’은 월 290만9000원이었다. 누리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졸 초임이냐” “아주 소설을 써라”는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경총 조사는 100인 이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다. 국내기업의 열에 아홉은 종업원 수가 30명 이하다. 100인 이상 업체는 전체의 1%도 안된다. ‘대졸 초임 290만원’은 취업 못한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기업에 근무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에게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장정현 | 콘텐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