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46년 10월16일 경향만평 ‘취객이라 욕만 마오’

“만사태평하게 잡바저 잔다고 고연히 남의 사정도 모르고 속단을 내리지 마오. 아! 머리가 아프다. 그 독한 술을. 이달 월급봉투도 빈봉투로 나올 것은 결정적일 것이다. 안해의 ‘운명’과 같은 어둔 얼골이 ‘알콜’에 마비된 몸을 더 한층 괴롭핀다.”

1946년 10월16일자 경향만평에 그림과 함께 실린 ‘취객이라 욕만 마오, 남모르는 사정을 술로’란 제목의 글이다. 경향만평은 해방 직후 정치적 혼란과 대규모 실업 사태 등으로 ‘술 권하는 사회’가 돼 버린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월급쟁이가 머리가 아프도록, 몸이 마비되도록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남모르는 사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경향만평에 나오는 취객은 <운수좋은날> <빈처>의 작가 현진건이 1921년 발표한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사례와 비슷하다. 새벽 2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에게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는가?”라고 아내가 물었을 때 남편은 “사회가 유위유망(有爲有望·쓸모도 있고 희망도 있음)한 나의 머리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하므로 이것저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니,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현 조선사회”라고 말한다. 1920년대나 1940년대는 서민들이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던 시절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1960년대는 어떠했을까. 장기집권을 노리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은 “이제 무슨 말을 하겠소. 그대로 떠나게 해주오”란 말을 남긴 채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경향신문 1960년 5월29일자 1면 보도). 1년 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인권은 훼손되고, 술은 마시되 대화는 함부로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서민들의 삶은 피폐했다. 경향신문 1970년 10월7일자 사회면에는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란 기사가 실렸다.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한 언론사상 최초의 보도였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높이가 1.6m밖에 안돼 허리도 펼 수 없는 2평 남짓한 작업장. 먼지가 가득한 그곳에서 15명 정도씩 몰아넣고 종일 일을 시켜 어린 소녀들이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까지 앓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달 뒤 평화시장의 봉제노동자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1990년대는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을까.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말은 ‘암울’, 그 자체였다. 2008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 파문으로 촛불이 타올랐고,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올해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으로 혼란스럽다.

해방 70년 동안 서민들에게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던 듯하다. 가을, 술이 그리운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취객이라 욕만 해서야 되겠는가. 강기성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