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8년 10월26일자 ‘범인없는 살인-이태원 사건’

좁은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셋. 한 명은 피해자, 나머지 두 명은 친구 사이다. 가능성은 세 가지. 각각이 살인범이거나 이들이 공범일 경우다. 두 명 중 누군가가 죽였다는 것은 100%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 1998년 10월26일자 3면에는 ‘범인없는 살인-이태원 사건’ 제하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사건의 전말’, ‘용의자는 단 2명, 진범은 누구냐?’, 이 사건을 취재한 미군 성조지 기자와의 인터뷰인 ‘노(老)기자 1년6개월 추적’ 등을 다루었다.





사건은 1997년 4월3일 오후 10시쯤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했다. 대학 재학생 조중필씨(당시 23세)는 주한미군 군속의 아들 2명과 마주쳤고 흉기에 9군데를 찔려 사망했다. 살인 용의자로 아서 패터슨(당시 18세)과 에드워드 리(당시 18세)가 지목됐다. 둘은 서로 상대방을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미 육군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한국 검찰에 넘겼다. CID는 패터슨이 갱단 소속원으로 살해 방법이 갱단이 사용하는 방법과 유사했다는 점, ‘패터슨 스스로 범행을 시인하는 말을 들었다’는 목격자 진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점 등을 유력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이첩받은 한국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조씨의 상처를 볼 때 범인이 조씨보다 커야 하는데 이에 장신인 리의 신체적 특성이 부합하는 점,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리를 범인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이 출국금지를 하지 않아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했고 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조씨 가족들은 절망했다.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성조지 짐 리 기자는 “CID가 제시한 증거를 한국 검찰이 빠뜨렸다”며 “한국 언론이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이 사건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민들 사이에 재수사 요구가 비등했고 2012년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지난 23일 오전 4시40분 패터슨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그는 입국장에서 “범인이 에드워드 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 언제나 그 사람이 죽였다고 알고 있다”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사건 발생 18년 만에 이 사건의 재판이 재개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건이 관 뚜껑을 열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검찰은 유죄 입증을 자신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