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6년 3월13일 폭스바겐 ‘딱정벌레’의 귀환

1961년 독일 매체에 별난 광고 하나가 실렸다. “이 차는 앞좌석 사물함 문을 장식한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이 나 있어서 교체해야 합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일하는 크루트 크로너 검사원이 발견했습니다.” 과장을 미덕으로 삼던 광고시장의 상식을 깬 폭스바겐 광고였다. 폭스바겐은 이 광고로 ‘믿을 수 있는 자동차’ 이미지를 심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폭스바겐은 독재자 히틀러의 국민차 프로젝트에 의해 1937년 설립되었다. 히틀러의 요구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차가 ‘딱정벌레’로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독일 차의 상징이 된 비틀은 1974년 독일 내 생산을 중단했다가 1990년대 말 새로운 모델로 부활했다.

경향신문은 1996년 3월13일자에서 ‘딱정벌레’의 귀환을 알렸다. “비틀이 24년 만에 새 모습으로 세계시장에 등장한다. 폭스바겐은 새 모델 ‘뉴비틀’을 1998년부터 생산, 유럽과 미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뉴비틀은 4륜구동으로 엔진이 앞에 장착된다. 첨단 안전장치와 1900㏄의 첨단 터보디젤-다이렉트인젝션엔진(TDI)을 달았다. 폭스바겐이 21세기를 겨냥해 내놓은 ‘작품’이다.”





폭스바겐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경향신문 기사(1986년 9월13일자 강홍규 소설가의 ‘관철동 시대’)를 보면 1960년대에 이미 국내에서도 운행된 것으로 보인다. 1968년 6월16일 김수영 시인이 세상을 떠나던 날, 청진동에서 소설가 이병주 등과 술을 마시던 김수영이 만취해 자리를 뜨면서 이병주의 차에 발길질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술집 밖에 폼나게 서 있던 이병주의 차가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로 돈이 돌기 시작한 한국 시장 진출에 무진 애를 썼다. 다양한 통로로 국내 업체와의 합작을 추진했지만 모두 불발됐다(경향신문 1979년 9월28일자). 폭스바겐은 외제자동차 수입 자유화가 이뤄진 1987년에야 한국에 대리점을 열 수 있었다.

폭스바겐은 1990년대 유럽의 디젤차 바람을 업고 한국 공략에 적극 나섰지만 세이블, 볼보, 크라이슬러, 벤츠, BMW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8년 뉴파사트1.8을 71대 팔아 베스트셀링카 9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 2005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2008년 티구안을 국내에 출시하면서 힘을 받기 시작했다. ‘강남 싼타페’로 불리던 티구안이 2014년 마침내 국내 수입차 중 1위를 차지했다. 골프는 4위, 파사트는 5위에 올랐다. 이 흐름은 올해도 계속 이어졌다(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자료).

48개국에서 하루 2만5400대의 차를 만들며 ‘클린디젤’ 대명사로 군림한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사건’으로 벼랑에 섰다. ‘모두를 위한 혁신, 인류와 환경에 대한 책임, 고객에게 최고 가치 제공’이라는 핵심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결과다. 폭스바겐의 추락은 한 기업의 신뢰뿐만 아니라 ‘클린디젤, 클린에너지’의 허상도 깨고 있다.




장정현 콘텐츠에디터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