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73년 6월23일 국사 교과서 국정으로···검정제 전면 폐지


한국사 교과서를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정권 교과서’로 만들 작정인가. 청와대와 여권, 교육부가 검인정 체제인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 역사학계와 학부모단체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은 국가의 획일적 시각을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망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발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1895년 근대 교과서가 처음 선보인 이후 교과서 발행은 줄곧 검인정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4년 국정 발행 체제로 바꿨다.






경향신문은 1973년 6월23일자 7면에 ‘국사 교과서 검정으로…검인정 제도 폐지’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문교부는 국사교육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초·중·고교 국사 교과서의 검정제도를 전면 폐지, 내년부터 국정화시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듬해인 1974년 1학기부터 초·중·고교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당시 문교부가 국사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꾼 데는 ‘음험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정권이 추구하는 ‘사관(史觀)’을 강요하고, 시민을 정권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전락시키는 이념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유신체제의 산물인 국정교과서는 말 그대로 ‘정권 교과서’가 된 셈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 11월 국정교과서 발행체제와 관련해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헌재는 “특히 국사 교과서는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 발행 체제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전면 폐지됐다. 현재 중·고등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극소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대부분 자유발행제나 검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일 태세다. 30여년 전 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강행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국정으로 발행되던 시기에 국사 교과서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1973년 3차 교육과정),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복지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1981년 4차 교육과정) 등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국사 교과서를 군사독재 정권의 미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의도를 갖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