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76년 5월29일 커피에 담배가루…일명 ‘꽁초커피’ 적발

요즘 커피는 삼시세끼보다 흔한 음료가 됐지만 한창 붐이 일던 1970년대에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1976년 5월29일자 7면에는 ‘커피에 담배가루 섞어 팔아’ 기사가 실렸다.

“서울지검은 28일 서울시내 일부 다방에서 커피의 양을 늘리고 색깔을 진하게 하기 위해 담배가루를 섞어 팔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사에 나서 ○○다방 주방장 등 5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다방 주방장 등은 커피 30잔을 내는 한 주전자를 끓일 때 알코피(원두커피)를 정량보다 적게 넣고 그 대신 3분의 1개비 분량의 담배가루를 섞어 색깔을 진하게 하거나 소금과 계란 껍데기를 넣어 커피 맛을 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적 충격이 컸던 만큼 경향신문은 “식품 범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그런 ‘꽁초커피’는 일부가 아닌 “전체 다방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커피의 중독성·유행을 악용한 “철면피한 상혼”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서울대 의대의 한 교수가 1979년 7월3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김치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먹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일이지만 중독이란 무섭다”고 했을 정도다.

18세기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는 말로 유럽 계몽주의의 확산과 중독성을 커피에 빗대기도 했다. 하루 50잔씩 마셨다는 볼테르 말고도 커피를 좋아한 위인은 많았다. 작곡가 바흐는 그 독특한 맛에 매혹돼 ‘커피칸타타’라는 음악을 작곡했고, 나폴레옹은 “진한 커피는 나를 일깨워주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놀라운 힘을 준다”고 말하곤 했다. 만년에 커피 맛을 알게 된 철학자 칸트는 잠잘 때 외에는 언제나 커피잔을 들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사상가 루소가 사망했을 때 그의 동료들은 “이제 커피 마시는 맛을 잃었다”며 슬퍼했다고 한다.




경향신문 1979년 11월12일자 3면엔 네덜란드의 한 의학잡지에 실린 ‘약물 부작용의 위험’이란 글이 소개됐다. 남편의 지나친 성적 요구에 넌더리가 난 부인이 커피 속에 여성호르몬을 타서 12년 동안이나 먹인 끝에 남편의 가슴을 부풀어오르게 해서 결국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편도 10여년이 지난 뒤에야 외과의사의 진찰로 비로소 자신의 몸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검붉은 색의 시큼하고 쌉싸래한 열매인 커피.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마셨다거나, 1913년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이 최초의 다방일 것이라는 등 한국에도 커피에 얽힌 일화는 많다.

1970년대에는 커피가 중독을 우려하는 기호품이었지만 지금은 온 국민의 애호품이 된 듯하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는 안될 일이다.



강기성 | 편집에디터 bois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