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81년 11월13일 ‘전 대통령에 전 각료 복무선서’

# 장면 1 : 복무선서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1년의 일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3일 남덕우 국무총리 등 각 부처로부터 새 시대의 공무원 복무자세를 다짐하는 5개항의 복무선서를 받았다. 60만 전 공무원으로부터 선서를 받게 된다. 정부는 선서문 2부를 작성한 뒤 1부는 임명권자에게 제출하고 1부는 본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전두환 개인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 경향신문 1981년 11월13일자 1면에 실린 기사이다.




# 장면 1-1 : 6월항쟁

“6·10 국민규탄대회에는 전국 18개 도시에서 오후 6시부터 가두시위가 계속됐다. 서울 도심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 시민들은 도로변에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또 점심시간에 나온 회사원들은 경찰의 최루탄에 항의해 ‘독재타도·호헌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학생들 시위에 호응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에 분노한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섰던 경향신문 1987년 6월10일자 기사다.

# 장면 2 : 절대복종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던 1961년 경향신문 7월4일자에는 “혁명정부의 2대 내각수반으로 임명된 송효찬 장군은 이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앞에서 ‘나는 5·16 군사혁명의 위대한 정신을 받들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것을 선서한다’고 다짐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또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언한 1972년의 일이다. 경향신문 10월18일자에는 “박정희 대통령은 10월17일 하오 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을 포함한 약 2개월간의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키고 비상조치를 취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 장면 2-1 : 3·1 민주구국선언

경향신문은 1992년 10월9일자에 실린 ‘대선후보 연구’에서 “김대중은 1972년 10월17일 유신 선포 다음날 ‘박정희 대통령의 조치는 영구집권을 목표로 한 반민주적 조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는 국내외를 통틀어 유신에 저항하는 첫 목소리였다”고 보도했다.

또 고은 시인은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자전소설 ‘나의 산하 나의 삶’(1995년 7월30일자)에서 “3·1절 쉰일곱돌을 맞으면서 전 세계에 울려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이 나라는 일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은 1976년 3월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미사를 빌미로 정부가 재야의 지도급 인사들을 정부 전복 선동 혐의로 대량 구속한 사건이다.

복종 강요엔 불복종, 독재에 반독재는 필연이다. 그래서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려 하고 있다.



강기성 편집에디터 bois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