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민주주의, 역사의 최종 단계인가?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중도 세력의 약화와 극우 세력의 약진이라는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서는 신생 극우 정당인 브렉시트당이 32%로 1위를 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주의 정당 국민연합이 23%로 선두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들의 이탈리아 입국 계략은 인신매매를 돕고 부추기는 일”이라면서 강경한 난민 반대 정책을 외치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극우세력인 북부동맹이 34%를 얻었다. 


난민 반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등의 극단적인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 극우 정당들이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가 그 자체로서는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기에 불안정한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를 인류가 만들어낸 최선의 체제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도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 또는 인류 최후의 정부 형태가 될지도 모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종말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약간의 문제점은 있겠지만 인류 진보의 최후 단계이자 거의 완벽한 정치제도라는 것이다.그러나 민주주의의 탄생지인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를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철인정치를 최선의 정치체로 생각했고, 민주정은 법이 지배하는 정상적인 정치체제(철인정치-과두정-금권정-민주정) 중 가장 나쁜 체제이자 우민 정치라고 비판했다. 크세노폰으로 잘못 알려진 한 그리스 철학자는 “시민 대중들은 매우 무지하며 규율이 없고 사악하다”면서 “이런 자들에게 민회에서 의사 표현을 하고 투표를 할 권리를 주면 안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민주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이 그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민주정을 법이 지배하는 가장 나쁜 정치제도로 폄하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정이 쉽게 참주정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자유로부터 가장 완전하고 무시무시한 예속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기적인 대중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법을 어기고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고대 철학자들의 비판을 엘리트주의적인 편협한 집단이기주의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경고가 전적으로 지식인의 편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역사 속에서 민주 정치가 때론 우민 정치로 전락하기도 했고 때론 폭정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15세기 피렌체 공화국 시민들은 광신적인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지지했고, 그로 하여금 종교적인 불경이라고 판단되는 사회의 모든 문명을 공격하는 광기에 가까운 독재체제를 수립하게 만들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민주공화국에서는 무솔리니가 주도하는 극우 성향의 파시즘 체제가 나왔다. 같은 시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나치즘이라는 괴물이 태어났다. 물론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독재 정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두 체제 모두 무력을 동원한 쿠데타가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수립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더욱 궁핍해진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독일의 노동자, 중간 계급은 히틀러와 나치당의 감언이설과 선전선동에 넘어갔다. 결국 수많은 독일 대중들의 왜곡된 욕망이 히틀러와 나치 체제를 가능케 했다. 독일 대중의 지지로 수립된 나치 체제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 나치의 인종차별과 학살을 외면하거나 때론 동조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독일의 나치즘이라는 광기의 역사는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가 끔찍한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나치즘 등장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님을 경고한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세력의 약진을 목격한 후쿠야마는 민주주의가 완벽한 체제가 아닐 수 있음을 시인했다. 토인비가 자기들의 문명을 보편 문명이자 인류 사회의 최종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속성의 망상’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또한 완벽하고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로서 인류 사회의 최종 단계가 아닐 수 있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체제이며, 앞으로 다른 체제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는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도 있고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시민들이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민주주의가 디스토피아로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종국 이화여대 교수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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