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최제우 죽음에 관한 진실

수운 최제우는 1864년 3월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선이라는 국가 권력에 의해 박해를 당한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를 ‘서학 죄인’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최제우는 자신이 믿는 도(道)는 ‘천도(天道)’요. 자기의 공부는 서학이 아니라 ‘동학(東學)’이라고 했다. 그러나 관헌은 그의 말을 묵살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민간에서 전하는 구전설화를 들어보면, 최제우의 죽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었다. 포졸들이 최제우를 체포했을 때란다. 그를 오랏줄로 꽁꽁 묶어 말에 태웠다. 짐짝처럼 말 잔등에 싣기는 했는데, 말이 단 한 걸음도 못 떼었다. 어서 서울로 가야 하는데 발굽이 땅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최제우의 도술이 워낙 셌기 때문이었단다.


다급해진 포졸들이 말에게 매질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죄 없는 말의 고통을 안타까이 여겨 최제우가 도술을 풀었다. 그제서야 일행은 출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문경 새재에 이르렀을 때 나라에 무슨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죄인을 모두 풀어주라는 사면령이 내려 최제우는 풀려났다. 그랬으나 얼마 뒤 다시 체포령이 내려졌고, 이번에는 서울로 데려올 필요 없이 당장 목을 베어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대구감영에서 최제우의 목을 베려고 형리가 칼을 뽑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최제우의 목은 멀쩡하고 칼만 연속 부러지더란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무튼 전설에 따르면,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는 초조해졌다. 그로서는 왕명을 한시바삐 집행해야 하는데 아무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최제우에게 엎드려 싹싹 빌었다. “최 선생님, 제발 좀 죽어주시오. 내가 당신을 못 죽이면 이제는 내가 죽어야 할 판입니다. 부디 저를 불쌍하게 여기시어 좀 죽어주시오!”


얼마 뒤 최제우가 대답했다. “음, 그렇게 하마. 죄 없는 너를 불쌍하게 여겨 내가 죽어주마. 내 겨드랑이를 열어 보거라. 비늘이 석 장 붙어 있을 것이다. 그 비늘을 다 떼고 나서 칼을 쓰거라. 그래야 내 목이 네 칼을 받을 것이다.” 


과연 그말 그대로였다. 겨드랑이 밑에 반짝이는 비늘이 있었다. 비늘을 다 떼어낸 다음에 목에 칼을 대자 그의 목이 꽃잎처럼 가볍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들 수군거렸다. “최제우는 수명이 다해 죽은 것이 아니다. 남을 불쌍히 여겨서 죽어준 거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무시해도 될 거짓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한 진실이 담긴 그 무엇인가? 최제우는 과연 죽어준 걸까, 아니면 죽임을 당한 걸까? 


최제우가 결코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염원이 강렬했기에 죽은 최제우는 좀체 죽지 않았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먼 훗날의 일이지만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이 운동은 과연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실패한 것인가? 학살사건이 일어난 며칠 동안으로 한정한다면, 그 운동은 그때 무참히도 실패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수 정태춘의 노래를 들어보자. 그날 광주의 높은 건물 옥상에는 진압군이 있었다. 시민의 목숨을 노리는 저격수도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쏴 죽였다. 군인들은 탱크로 시민을 무참히도 깔아뭉개 버렸다. 그럼 광주시민들은 지고 만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해 오월, 광주시민들이 진압군에게, 아니 압제자에게 꺾이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날 그 자리에서는 시민들이 진압되었으나, 그들이 품었던 민주화의 강렬한 의지와 소망은 죽지 않았다. 광주는 1980년대의 대학가를 계속적으로 지배했다. 바로 그 힘으로 30년 넘게 계속되던 군사독재의 길고 완강한 흐름이 끝장났다. 광주민주화운동 세력이 압제자들을 물리치게 되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1864년, 꽃피는 봄날, 최제우가 목이 잘린 채 죽었느냐, 안 죽었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 같은 것이다. 최제우를 하나의 생물학적 개체로만 보면, 그는 그날 목이 댕강 잘린 채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중요한 것일까? 최제우라는 위대한 스승은 죽음을 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찬란한 빛으로 살아남았다. 최제우가 금부도사를 불쌍히 여겨 죽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의 종교적 진실이다. 이 세상의 역사적 사실과는 어긋나지만 그 이야기에 담긴 깊은 뜻으로 보면 매우 높은 차원의 진실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진실이 우리의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세상은 한 번도 완전히 공평했던 적이 없다. 자유도 민주도 어디서건 온전히 구현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런 가치가 온전히 실천되는 것은 먼 미래에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명명백백한 현실의 한계, 또는 인간체험의 경계를 강력히 부정하는 거센 흐름이야말로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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