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남영동 대공분실’의 변신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김수근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작품 연보가 소개돼 있다. 대표작 ‘공간 사옥’(1971)을 비롯해 남산 자유센터(1963), 경동교회(1980), 인천상륙작전기념관(1982), 불광동성당(1982), 청주박물관(1985) 등 익숙한 건축물이 많다. 그러나 그의 건축 리스트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물론 재단이 공개한 작품연보에는 빠져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가 ‘국가보안 사범’ 전문 수사처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7층 벽돌 건물로 앞면을 제외하고는 창이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특히 5층은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수직으로 작은 창을 냈다. 위압적이고 폐쇄적이다. 1987년 1월14일, 이곳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났다. 앞서 1985년 8월에는 김근태 민청련 의장이 22일간 고문에 시달렸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70~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사람은 384명이나 됐다. 당시 남영동은 ‘고문정치의 대명사’였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방문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0일부터 9월29일까지 기획전시 ‘잠금해제(Unlock)’전을 개최한다. 권도현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와 뒤이은 6월항쟁을 통해 대공분실의 실체가 드러났다. 고문실, 나선형 계단 등 감시·고문의 시설도 공개됐다. 악마와 같은 건축물이다. 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수근의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 건축가는 “외부 형태에서 실내 공간에 이르기까지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언어를 통해 ‘고문’의 기능이 치밀하게 녹아 있다”며 놀라워했다. 2005년 대공분실은 경찰청 ‘인권 보호센터’로 바뀌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5층 509호실은 추모공간으로 바뀌었고, 인권사료전시관도 들어섰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공분실을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개관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10일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정부 주최 6·10민주항쟁기념식이 거행됐다. 남영동 대공분실 현장을 젊은 작가들이 예술적 감성으로 해석한 ‘잠금해제’전도 개막했다. 군사독재 시절 구타·고문·회유·조작 등 인권탄압의 밀실이 민주시민의 교육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민주인권기념관’은 2022년 정식 개관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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