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재외동포’ 윤동주

중국 지린성 용정시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커다란 표지석과 함께 한글과 중국어로 새긴 ‘서시’ 시비가 있다. 기념물만 보면 윤동주는 중국어로도 시를 쓴 조선족 시인이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윤동주를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소개한다.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중국 태생이니 중국인이라는 주장은 고구려·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다.


윤동주는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한 적도, 중국어로 시 한 편 쓴 일도 없다. 용정중학 학적부와 일제 판결문에 적힌 윤동주는 모두 ‘조선인’이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민족의 정서를 시에 담았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시 ‘슬픈족속’) 윤동주는 28년 생애의 대부분을 중국과 일본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재외동포의 디아스포라 의식도 없다. 윤동주는 조선의 청년이고 시인이었다.


교육부가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라고 표기한 교과서를 배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초등 6학년 국정 도덕교과서에는 윤동주가 ‘독립을 향한 열망과 자신에 대한 반성을 많은 작품에 남기고 떠난 재외동포 시인’으로 나온다. ‘한민족 혈통을 지닌 자로서 외국에 거주·생활하는 자’라는 재외동포 개념을 따진다면 윤동주를 재외동포로 규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낯설고 불편하다. 재외동포는 조선족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윤동주를 외국국적자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억지주장을 옹호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외동포 윤동주’ 표기는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재외동포 정체성 정립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신중하지 못했다. 재단은 또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기리는 ‘윤동주 콘서트 별 헤는 밤’을 기획해 오는 15일 KBS 2TV로 내보낼 예정이다. ‘재외동포 윤동주’는 ‘중국 조선족 윤동주’만큼이나 위험하다. 교육부는 중국 역사왜곡에 악용될 수 있는 교과서 표기를 시정해야 한다. KBS 또한 ‘윤동주 콘서트’ 방송을 재고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