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청와대 미남불상과 데라우치 꽃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1922년판 <조선식물명휘>에 실린 조선 고유 식물 2종의 이름이다.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 대신 왜 화방초라 했을까. 초대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에서 따왔다. 꽃의 학명도 ‘하나부사야(Hanabusaya)’로 시작된다. ‘사내초’는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의 이름을 딴 꽃이다. 이 꽃의 이름은 ‘조선화관’ 혹은 ‘평양지모’라 바뀌었는데 학명은 여전히 ‘데라우치아(Terauchia)’로 시작된다.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의 변(1913년)이 기가 막힌다. “데라우치 총독 각하 덕분에 (식물조사를 벌였으니) 감복하고 있으며, 본 식물을 각하에 바쳐 길이 각하의 공을 전하려 합니다.” 딸랑딸랑, 아부의 극치이다. 이 학명은 100년이 지나도록 지울 수 없는 오명이 되었다.

 

 

 

데라우치를 향한 아첨의 흔적은 또 있다. 그것도 이 땅의 심장부인 청와대 한쪽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른바 ‘미남석불’(사진)이라 일컫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다. 때는 바야흐로 1912년 말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가 어딘가에 앉아 있던 이 석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스바라시(すばらしい·굉장하다)”했을 것이다. 데라우치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만 다신 채 돌아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자가 있었으니 당시 경주금융조합이사인 고다히라 료조(小平亮三)였다. 데라우치가 일본 출장을 간 틈에 잽싸게 그 불상을 경성(서울)의 왜성대 총독관저로 옮겨놓는다. 1939년 총독관저가 지금의 청와대로 이전하자 이 불상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미남불상은 1993~1994년 구포역 열차전복·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서해 페리호 침몰·성수대교 붕괴·충주호 유람선 화재 등 참사가 이어지자 괴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난다.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버리자 사고가 빈발한다는 소문이었다. 청와대가 부랴부랴 미남석불을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데라우치가 총독 시절 일본인이 약탈해간 경천사탑과 지광국사 현묘탑의 반환에 힘을 썼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특한 일도 했다”고 나름 평가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데라우치는 조선을 영원한 일본의 속국으로 여겼다. 그저 자신이 총독으로 있는 한 조선의 문화재를 본국에 빼앗기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