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조선의 하늘을 비춘 ‘손님별’

 

‘케플러 초신성’이라는 천문현상이 있었다. 1604년 10월17일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한 초신성 폭발현상(사진)을 일컫는다. 이보다 4일 전인 10월13일 조선의 <선조실록>에도 초신성 기록이 등장한다. “1경(오후 7~9시)에 황적색의 객성(客星)이 미수(전갈자리) 10도의 위치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객성, 즉 초신성은 6개월간 연속으로 관측됐다. 케플러는 신기한 우주쇼로 여겼겠지만 선조 임금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조는 객성을 적성(賊星), 즉 도적별로 규정하면서 “하늘의 꾸지람이니 몸과 마음을 삼가야 한다”고 반성했다. 조선의 임금은 초신성의 출현을 ‘하늘이 임금에게 내리는 경고메시지’로 해석했다.

 

1572년 11월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별의 대폭발(초신성)을 관측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조선의 유학자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는 “선조 5년(1572년) 11월 금성만 한 크기의 객성이 책성(카시오페이아자리)의 옆에 나타났다”고 기록했다. 고려 문종 때인 1073~1074년 사이에 주기적으로 나타난 ‘모과’ 크기의 객성은 물병자리 ‘아르 아쿠라이’ 신성 폭발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서양에는 없는 기록이다. 1594년(선조 27년) 관상감 관리들이 1592~1594년 사이 15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두 번 관측된 객성의 실체를 두고 집중토론회를 연다. 이들이 논쟁 끝에 도출한 합의는 의미심장했다. “이 별은 두 번 주기로 15개월이나 관측됐다. 생겼다가 사라져버리는 객성(초신성)이 아니다. 항성(태양처럼 움직이지 않는 별)이다.” 과연 이들의 추정은 옳았다. 최근 연구결과 이 별은 초신성이 아니라 자체적인 수축·팽창으로 빛의 밝기가 변하는 항성, 즉 변광성이었다. 세계 최초의 변광성 기록이다.

 

최근 6개국 공동연구진이 “1437년(세종 19년) 객성이 전갈자리의 2~3번째 별 사이에서 14일이나 나타났다”는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전갈자리에서 확인한 가스구름이 바로 1437년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1437년 전갈(스콜피온)에서 찾아낸 신성(노바)의 뜻인 ‘노바 스코피 1437’이다. 연구에 참여한 외국 학자는 “세종의 신성은 역사학에서 찾아낸 가장 사랑스러운 조각”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늘은 곧 백성’이라 여겼던 고려와 조선의 군주가 하늘땅, 별땅에서 찾아낸 사랑의 편린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