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출산 중 사망한 모자 미라

“이상한데….” 2002년 9월 경기 파주시 파평 윤씨 문중 묘소에서 발굴된 여성 미라(사진)의 상태를 육안 관찰하던 고려대 의대 김한겸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라의 복부 부분이 심하게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혹 암덩어리 아닐까.’ 그렇다면 수백년 전 암으로 사망한 여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검사해보니 미라의 배 안에서 만삭 크기의 남자 태아가 보였다. 미라의 외음부를 살짝 열어보니 태아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태아의 머리가 산도(질)에 진입한 상태였다. 자궁벽에 3×4㎝의 별 모양 파열흔적이 선명했다. 연구팀이 장탄식했다. “아뿔싸! 산모가 5분만 버텼어도….” 미라의 옷고름 글씨(병인윤시월)를 역산해보면 여인은 1566년 윤10월에 사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금만 버텼어도 사내를 낳았다고 축복받을 여인이었는데 그만 출산직전에 자궁파열에 의한 쇼크로 태아와 함께 세상을 뜬 것이다.

 

 

이 ‘모자 미라’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사례다. 임신 중 태아가 온전히 남아 있기는 불가능하다. “부패가스가 태아를 몸 밖으로 밀어내기 때문”(김한겸 교수)이다. 2004년 대전에서 발굴된 ‘학봉장군’ 미라의 사인은 피를 토하는 중증 폐질환이었다. 마침 “포황(애기부들 꽃가루)은 지혈제로 사용된다”는 <동의보감> 내용이 있다. 학봉장군의 장기에서 확인한 상당량의 애기부들 꽃가루를 단서로 폐를 정밀검사한 결과 얻어낸 사인이었다. 학봉장군은 기관지 확장증 같은 폐질환 치료를 위해 지혈제로 꽃가루를 복용하고 있었다. 2001년 경기 양주시에서 확인된 댕기머리 소년 미라(5~6세)의 사인은 ‘속립성 결핵’으로 추정됐다. 이 가련한 소년은 결핵균이 혈액의 흐름을 타고 온몸에 퍼져 사망에 이르렀다. 2010년 경북 문경시에서 발굴된 진성이낭(眞城李娘) 미라의 사인은 죽상동맥경화증에 의한 심혈관 질환이었다. 17세기 여인이 나쁜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는 현대인의 성인병으로 사망했다.

 

조선시대 미라는 회곽묘에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석회와 모래, 황토를 3 대 1 대 1로 섞어 싸바르면 몇 년 후 벽돌처럼 단단해진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身體髮膚 受之父母)을 터럭 하나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는 가르침을 따랐던 조상들의 노심초사가 생생하다. 이 풍습이 ‘의도하지 않은 미라’를 낳았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