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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모비딕’ 작가 허먼 멜빌 사망

윤민용 기자 

ㆍ‘체험을 문학으로’ 해양소설 새 경지 개척

영문학사에서 소설가 허먼 멜빌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그는 19세기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으로, 모험소설 <모비딕>을 통해 미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하나 생전의 그는 무명작가에 가까웠다.
 
1819년 8월1일 미국 뉴욕시에서 멜빌은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8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13살에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으로 소년 멜빌은 학업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온갖 잡일을 전전하던 그에게 바다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20살 때 잠시 영국 리버풀로 가는 여객선에 선원으로 승선했고, 1841년 당시 포경업의 중심이던 뉴베드포드에서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포경선 아쿠시네트호에 탔다. 

그러나 포경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일 자체가 위험하고 더러운 데다 선장은 선원들을 혹사시켰다. 실제로 그가 탄 아쿠시네트호에서도 선장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선원들이 탈출하기도 했다. 멜빌 역시 동료와 함께 남태평양 마르키스 제도에서 탈주해 식인풍습이 있는 섬에서 4주간 체류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데뷔작 <타이피족>이 탄생했다. 이후 그는 다른 포경선에 의해 구출돼 남태평양의 타이티 섬 일대에 머물렀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르디> <오무우> 등 일련의 해양모험소설을 발표했다. 

그가 기념비적인 작품 <모비딕>을 완성한 것은 서른두살 때. <모비딕>은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한 청년 이스마엘,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고래 모비딕에 대한 증오와 광기에 사로잡힌 에이허브 선장, 합리적 기독교도인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민족이지만 통찰력을 지닌 퀴퀘크 등이 흰고래 모비딕을 쫓는 과정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 

이 소설은 고래잡이에 관한 박물학 서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래의 생태와 활동, 포경 기술, 포획한 고래의 처리 및 가공에 많은 설명을 할애했다. 해서 한동안 <모비딕>은 서점의 문학 코너가 아니라 수산업 코너에 꽂혀 있었다. 그가 이 작품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고작 556.37달러에 불과했다.

대중은 실험적이고 철학적인 경향을 띤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멜빌의 말년은 비참했다. 식구가 많은 데다 출판사가 파산해 인세도 못받고 빚은 늘어났다. 작품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1866년 이후 뉴욕 세관 감독관 자리를 얻어 20여년 근무했다. 작가로서 멜빌은 잊혀지다시피 했다. 1891년 9월28일 새벽 심장병으로 세상을 떴을 때 그를 문학계 인사로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멜빌의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이뤄졌다. 탄생 100주년인 1919년에야 연구자들이 멜빌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멜빌은 독자에게 어려운 작가였다. 20세기 후반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한 것은 카페 체인인 스타벅스이다. 문학적 성향이 다분했던 스타벅스의 초기 창업자들이 <모비딕> 속 냉철한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왔던 것이다. 

멜빌을 기리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고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종의 거대한 향유고래 화석을 발견하고, 멜빌의 이름을 따 ‘리바이어던 멜빌’이라는 학명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