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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월간지 ‘사상계’ 강제 폐간

김준기 기자
 
ㆍ독재정권에 맞선 비판적 지성지

1950~196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지였던 ‘사상계’는 1952년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에서 출발했다. ‘사상’의 편집인으로 참여했던 장준하가 1953년 4월 이 잡지를 인수해 제호를 ‘사상계’로 바꾸고 월간 종합교양지를 만든 것이다.

‘사상계’는 민주주의와 자유언론, 남북통일, 노동 등의 분야에서 자유와 진보에 기반을 둔 권위 있는 글을 실었다. 특히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글로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는 판매부수가 5만~8만부에 이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장준하가 196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발행인이 부완혁으로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의 미움을 받아오던 ‘사상계’는 1970년 9월29일 문화공보부가 “등록효력을 상실했다”고 통보하면서 폐간됐다. 폐간의 진짜 이유는 그해 5월호(205호)에 실린 김지하의 ‘오적’이라는 시 때문이다. ‘오적’은 부정부패로 물든 한국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늑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 오적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풍자했다. 시가 언급한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이다. 김지하와 발행인, 편집인 등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잡지 발행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9월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부완혁은 1972년 4월 대법원에서 ‘사상계’ 등록취소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잡지사를 유지할 자금이 부족했고, 필자나 인쇄소도 찾기 어려웠다. 부완혁이 사망한 뒤 판권을 상속한 장녀가 몇차례 복간을 시도하다 28년 만인 1998년 6월호(206호)가 발간되고, 2000년 6월에는 207호가 나왔다. 그러나 이는 2년 이상 발행이 중단되면 등록이 취소된다는 정기간행물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임시로 한정본만 낸 것이다.

2003년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씨가 귀국해 복간을 재추진, 2005년 10월부터 인터넷상에 웹진 형태의 ‘e-사상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각계 인사들이 힘을 보태 2009년 6월 복간준비호까지 발행했으나 아직 정식 복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