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5년의 엔저 쇼크




“세계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이 달러당 100엔대를 넘어서며 엔화가치가 급격히 약화되자 기업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이 문장만 보면 아마도 대다수의 독자는 요즘의 얘기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18년 전인 1995년 9월16일 경향신문 9면 머리기사 내용이다.



‘엔저…기업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면서 엔고로 올 상반기 수출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증가하는 호황을 누려온 자동차 업종도 엔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사에는 자동차 11.6%, 가전 11.2%, 기계 8.1% 등 엔화가 10% 절하됐을 경우를 상정한 업종별 수출 감소폭 표까지 싣고 있다.



수치만 다를 뿐 엔저를 바라보는 요즘 업계 시각과 큰 차이가 없다.



기업들은 엔저로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정부도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부활시키는 등 아우성이다. 물론 수출기업들에 엔저는 부담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의 위기론은 과포장돼 있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에 현재의 엔저는 과거만큼 파괴력을 갖지 않는다.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한 덕에 환율에 일희일비할 정도는 아니다. 실적이 떨어졌다면 환율 탓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과거 정권의 기업정책은 대기업 중심이었다. 지난 4년간 정부의 원화 약세 정책으로 득을 본 것은 수출 대기업이다. 하지만 그 온기는 사회 전반에 파급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까닭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근의 엔저는 되레 대기업들에 경제민주화 회피 구실로 작용한다. 실제 경제민주화 정책은 정부 출범과 동시에 퇴색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은 다시 주변부로 밀려나갈 것이다. 진정 엔저를 걱정한다면 중소기업 살리기에 더 전념해야 한다.




박용채 경제에디터 py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