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83년 4월을 흔든 ‘대도’


 

‘대도’ 조세형이 재판 도중 탈주했다가 붙잡혔다.



 “경찰이 추격하자 조는 가정집으로 뛰어들어 대학생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19일 상오 10시24분 경찰의 총에 맞고 붙잡혔다. 현재 서울 백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는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1983년 4월19일자 1면)



30년 전인 1983년 4월, 세상은 조세형으로 떠들썩했다.


조세형은 4월14일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엿새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이다 붙잡힌 조세형은 “무기구형이 억울해 탈주했다”고 항변했다. 조세형은 탈주 직전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 “나는 세상 사람이 화제로 삼는 물방울 다이아 등 도둑질은 많이 했으나 피해자는 물론 다른 사람의 피 한 방울도 흘리게 한 적이 없다”며 “그런 내게 중형 구형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름 당당해하는 이유는 있었다. 조세형은 대중에게 ‘현대판 홍길동’으로 회자됐다. 주로 부유층과 권력층의 저택만을 골라 수백억원대의 귀금속, 현금을 털어온 행각 때문이다. 1982년 11월 경찰에 붙잡힌 조세형의 집에서 압수된 귀금속은 마대자루 2개 분량에 달했다. 귀금속의 주인은 전직 총리와 국회의원, 재벌총수, 고위관료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이 수두룩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당사자들은 피해 사실을 극력 부인했다.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단면이 드러나자 대중들의 분노는 컸고, 조세형은 ‘의적’ ‘대도’라는 별칭을 얻었다. 암울한 시대가 도둑을 의적으로 만든 것일 터이다.


75세의 조세형이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빌라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빈집털이를 하다 붙잡혔다. 드라이버 하나로 고관대작의 저택들을 감쪽같이 털어 세상을 들썩이게 하던 그가 좀도둑으로 전락한 꼴이다. 경찰에서 조세형은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짓을 했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대도’에게도 세월은 속절없는 것일까.



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