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전두환과 공정거래법

박용채 경제 에디터





1980년 9월19일 당시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군인 전두환이 국보위 위원장을 거쳐 대통령이 된 지 3주가 채 안 된 시점이다. “정부는 공정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연내에 제정키로 했다. (중략) 이를 위해 준사법적 권한을 갖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신설하고, 규정을 위반할 경우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 해 12월 공포를 거쳐 이듬해 4월 법이 시행됐다. 작품은 김재익 경제수석의 손에서 나왔다. 전두환의 경제과외 선생이던 김 수석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다 83년 아웅산테러로 유명을 달리했다. 개발독재는 한국 경제를 양적으로 성장시켰지만 불균형 확대, 시장기능 왜곡, 독과점적 구조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물리적 폭압으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부가 시장 독과점 규제 제도를 밀어붙인 것은 역설적이다. 다만 딴 주머니로 독과점 자본과 손잡고 정치자금을 빨아들인 이중적 행태는 한계였다. 당시 공정거래법은 이후 11차례의 개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독과점을 규제하고 공정거래를 확립하자는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커지면 공정위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공정위 출신 관료들은 독과점 기업 진영으로 흡수된다. 올해도 전직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갔다. 대형 법무법인에 포진한 전직 공정위 관료만도 수십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개 현직 후배들에게 독과점 자본의 논리를 대변한다. ‘현직의 창’은 ‘전직의 방패’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전직들의 이런 움직임은 공정거래법을 만든 뒤 되레 독과점 자본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30년 전의 군사정부 모습과 겹친다. 이는 한국의 기득권 구조가 그만큼 견고하고, 공정거래법이 여전히 미완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는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