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박정희 정권 최대 성 스캔들 ‘정인숙 피살’

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






1970년 3월17일 늦은 밤 서울 마포 절두산 아래 ‘강변 3로’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하오 10시45분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39 강변 3로에서 서울자2~262호 검은색 승용차(코로나)를 운전하던 정종욱씨(31)와 정씨의 누이동생 인숙양(26)이 4·5구경 권총에 맞아 왼쪽 귀밑에 관통상을 입은 인숙양이 숨졌고 정씨는 오른쪽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경향신문 1970년 3월18일자 7면)


미모의 20대 여성이 오빠와 함께 심야에 자가용을 타고 가다 권총으로 피살당한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대중의 관심을 끌 요소를 지녔다. 경찰은 원한이나 치정 등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추정해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살당한 정인숙씨의 신상이 알려지면서, 단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 숱한 고급남성 접촉으로 구구한 설의 아버지를 둔 3살짜리 아들까지 두게 된 것’(3월20일자 7면) 등 정씨의 수상한 신상이 하나둘 드러났다. 특히 정·관계 고위 인사 26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정씨의 수첩이 언론 취재를 통해 확인되면서 사건은 타락한 권력과 성이 얽힌 희대의 스캔들로 확대됐다.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등 절대권력의 실세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최고 권력이 엮인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의 끝은 뻔했다. 경찰은 불분명한 자백만을 근거로 오빠 정씨에 의한 강도살인 사건으로 발표하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지었다. 경향신문 3월23일자 사회면 기사는 ‘배후 수사 않겠다는 경찰 수사 발표의 의문점’을 열거하면서 ‘아기 아빠에 대한 수사를 않은 점’을 첫 번째로 지목했다. 최고 권력층과의 염문, 숨겨진 아들의 아버지를 두고 갖가지 설이 돌았으나 박정희 정권 최대 섹스스캔들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은 채 미궁에 빠졌다.


‘정인숙 사건’이 발생한 지 43년이 지났다. 권력과 성이 뒤엉킨 스캔들이 터져 시끄럽다. 권력기관의 고위 간부들과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건설업자로부터 성 접대를 받은 의혹이다. 이번엔 ‘정인숙 사건’ 때처럼 사건의 진상이 분칠되거나 묻히는 일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