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72년 문교부의 혁명적 입시 방안

고교 내신성적의 대학입시 반영은 최근에 나온 정책이 아니었다. 40여년 전에도 있었다. 경향신문 1972년 4월17일자 5면을 보면 문교부(지금의 교육부)는 그날 1973학년도 대학 신입생 전형지침을 전국 97개 대학에 ‘시달’했다. 예비고사 성적과 중·고교 성적 내신을 대학 입시에 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문교당국자는 “고교 교육이 대학 입학 출제 문제 등에 크게 좌우되는 실태를 감안하면 다소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제도 개선으로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해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기왕의 대입시험이 국·영·수 등 ‘주지 과목’에만 편중돼 고교에서 지·덕·체를 골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 방법이 외면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뜻은 좋았지만 소위 ‘5대 공립고교’니 ‘5대 사립고교’가 오르내리는 시절이었으니 고교 내신의 대입 성적 반영은 마른 하늘에 천둥 치는 격이었다. 격렬한 반발에 부닥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경향신문은 “고등학교 측에서는 발전적인 입시제도의 한 방법이라며 찬의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런 대입제도 변경에 찬성한 고교에 명문고는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들은 일제히 반대의견을 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일부 교육 전문가와 대학 측에서는 회의적인 태도. 이들은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하겠다는 정신이나 의도만은 좋지만 아직 고교 성적을 올바르게 반영할 만한 교육풍토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견들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고교의 실력이 평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인 성적 반영이 어렵다는 거였다. 같은 ‘수’라고 해도 명문고와 다른 학교의 성적 수준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문교부의 혁명적인 입시 개선 방안은 결국 도입되지 못했다.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장악한 명문고 출신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예비고사 성적의 대입 반영도 서울대와 이름있는 국·사립대들이 외면해 한동안 표류했다.



조호연 사회 에디터 c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