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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거절하려 만든 ‘궁합’ 남녀의 사주를 따져 배우자로서 적격인지 알아보는 방법을 궁합이라고 한다. 궁합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의 골칫거리는 흉노족이었다. 한나라는 수시로 국경을 침범하는 흉노를 어르고 달래며 우호적 관계를 맺고자 애썼다. 한나라가 저자세로 나오자 기고만장해진 흉노의 우두머리는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다. 귀한 공주님을 오랑캐에게 시집보내다니 될 말인가.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면 후환이 두렵다. 점잖은 핑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궁합이다. 궁합은 당나라에 와서 체계화된다. 당나라는 세계제국이었다.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과 상인들이 당나라 수도 장안의 문을 두드렸다. 신라인, 일본인, 인도인, 아랍인, 심지어 아프리카인까지 몰려들었다. 일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
광해군의 정치적 오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선 시대 쿠데타로 두 명의 임금이 왕위에서 물러났다. 연산군(재위 1494~1506)과 광해군(재위 1608~1623)이다. 물론 단종과 고종도 강제로 왕위에서 축출되었다. 하지만 단종은 12세에 즉위해서 제대로 자신의 정치를 해보지도 못했고, 고종은 열강의 각축 속에 일본의 강압에 물러났기에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은 성인으로 즉위해서 각각 12년과 15년을 재위했다. 즉 이들의 정치적 말로에는, 남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자기 몫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 ‘반정’으로 물러났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일반에는 물론이고 조선 시대 전공자들에게도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연산군은 일종의 ‘악한’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는 임금으..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인 도쿠가와 시대(1603~1868)에도 일본인들은 스모에 열광했다. 그래서 전국 스모선수들의 랭킹표를 만들어 일반서민들도 이를 보며 즐겼다. 이 표를 ‘방즈케(番付)’라고 한다. 스모에서 시작된 방즈케는 그 후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답게 동일본, 서일본으로 나누어 온천 순위를 매겼다. 지금도 간사이, 간토로 동서를 나눠 비교하길 좋아하는 일본인의 지리감각이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의 오제키(大關, 스모 최고타이틀)는 구사쓰온천, 서는 아리마온천이다. 한국인들이 즐겨찾는 벳푸나 하코네온천은 그 아래 급인 세키와케(關脇)에 랭킹되어 있다. 이 온천들은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곳들이다. 나도 일본온천을 가볼 만큼 가봤지만, 내게 오제키는 구사쓰온천이다. 방즈케는 실로 다양했다...
역사적 교훈을 실천한다는 것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는 보통 평양을 중시하라는 5조나 차현 이남 공주강 밖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8조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십조’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총 조항은 10조나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의 제7조다. “옛 사람이 ‘좋은 미끼를 쓰면 반드시 큰 고기가 물고, 상을 잘 주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있으며, 활을 겨누면 반드시 피하는 새가 있고, 어진 정치를 펼치면 반드시 착한 백성이 있다’고 하였다. 상과 벌이 적절하면 음양이 순조로워진다.” 정치를 잘하면 백성이 순하게 말을 잘 들을 것이며, 상벌이 적절하면 만사가 잘될 것이라는 얘기니, 너무 상식적이어서 평범하다. 이래서 이 조항이 큰 관심을 못 받아온 것이다. 그나마 ‘음양이 순조롭다’는 표현이 요즘 시대엔 낯설..
서울의 열 가지 풍경 지난달 국립한국문학관이 공개한 은 1479년 금속활자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보물급 문화재다. 조선 초기 서울의 열 가지 풍경을 노래한 시 90편을 엮은 책이다. 책임 편집자로 20년간 문단 권력을 장악한 서거정을 비롯해 강희맹, 이승소, 성현, 월산대군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이 지은 시는 여러 문헌에 흩어져 전하고 있는데, 한데 묶은 단행본의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 실린 서울의 열 가지 풍경을 소개한다. 첫째는 장의사에서 승려 만나기다. 장의사는 북한산 남쪽, 현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사찰이다. 당시는 공무원 연수원 겸 휴양소였다. 그 앞을 흐르는 홍제천은 도성 밖 최고의 유원지로 손꼽혔다. 둘째는 제천정에서 달 구경하기다. 제천정은 한남역 서쪽에 있던 정자로 한강 ..
시대별 인재 여러 해 전에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인재들이 온통 월가로 몰리는데, 그것이 미국에 무슨 이익이 되느냐는 한탄 섞인 글이었다. 미국 인재들이 왜 월가에 몰리는지 그가 몰라서 한 말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개인에게 최대한의 이익이 되는 일이 국가에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인재들’ 다수는 노력 대비 성과가 가장 많은 경제적 선택을 했을 뿐이다. 지난해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많은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군사독재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그것을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미얀마 군사정부가 머지않은 장래에 종식될 것 같지는 않다. 미..
정말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 자주 듣는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임신 막달에 배가 너무 불러 위산이 역류하고 누워도 불편하여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이를 가지고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한 줄 알아라”라고 위로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말을 해 주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정말 더 힘들어지나? 확실히 몹시 괴롭긴 하였다. 밤낮이 바뀐 아이는 밤에 1시간 간격으로 깼다. 아직 젖 빠는 힘이 약한 아이는 30분쯤 걸려서 종이컵 반도 안 되는 분유를 간신히 먹고는 30분 까무룩 잤다 다시 깨곤 했다. 등판에 센서라도 달렸는지 눕히기만 하면 바로 깼기에 그 30분 잘 때도 품에 안은 채로 나도 같이 조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 직후라 손목도 아프..
여행갈 때 뭘 가져가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여행갈 때 뭘 가지고 갔을까. 어디에 가서 뭘 봤다는 기록은 많아도 뭘 가지고 갔다는 기록은 드물다. 최대 분량의 개인일기인 황윤석의 에 단서가 있다. 1766년 황윤석이 고향 흥덕(전북 고창)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갖고 간 물건 목록이다. 도포 두 벌, 적삼 세 벌, 버선 세 벌, 바지와 속옷 여러 벌, 한여름인데 겨울옷까지 가져갔다. 비를 대비해 삿갓과 비옷도 챙겼다. 짐 한쪽을 차지한 세면도구와 구급약은 지금도 여행자의 필수품이다. 선비 아니랄까봐 안경, 종이, 붓, 먹, 벼루에 책도 여러 권 넣었다. 심지어 베개와 이불, 요강까지 가져갔다. 조선시대 주막은 침구를 제공하지 않았으니까. 이쯤 되면 혼자 힘으로는 무리다. 나귀에 싣고 갔거나 노비를 시켜 운반했을 것이다. 황윤석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