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어제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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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이 돼버린 꿈의 휴양지 정진호 기자 ㆍ1997년 대한항공 801편 괌에서 추락 1997년 8월6일 새벽 1시40분(한국시간 0시40분)쯤 “탑승하고 계신 대한항공 801편은 5분 후 괌 아가냐 공항에 착륙합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라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가족 단위 피서객과 신혼부부가 많았던 기내에는 ‘태평양 꿈의 휴양지’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2분 후,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렘이 불길한 예감으로 바뀌는 순간 비행기는 정글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며 폭염과 함께 세 동강이 났다. 공항에서 남쪽으로 4.8㎞ 떨어진 ‘니미츠 힐’ 중턱 밀림에 추락한 것이다(사진·경향신문 1997년 8월7일자 1면).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9명이 사망하고 25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사고현장..
2007년 ‘소녀시대’ 데뷔 이윤주 기자 ㆍ한류 열풍 이끄는 아시아 최고 걸그룹 2007년 8월5일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 등장한 풋풋한 9명의 소녀가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룹명인 소녀시대는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한 각각의 멤버는 대중성을 갖춘 노래와 놀랄 만한 수준의 군무로 데뷔와 동시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4년 뒤 소녀시대는 대중문화의 아이콘,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진출한 한류의 선두주자가 됐다. 지금은 ‘소녀시대’다. 본격적으로 소녀시대의 전성기를 열어준 곡은 2009년 1월 발표한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지(GEE)’였다.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쉽게 들어오는 이른바 ‘후크송’의 정점에 있는 노래였다. 같은 단어..
1926년 윤심덕·김우진 동반자살 ㆍ비극 부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926년 8월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를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관부연락선이 쓰시마섬 옆의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양장을 한 한 여자와 신사가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들은 승객명부에 가명으로 등록돼 있었지만 여자는 윤심덕(왼쪽 사진), 남자는 김우진(오른쪽)으로 밝혀졌다.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이자 대중가수로 1920년대 신여성의 대표인물이다. 김우진은 신극운동을 하던 전라도 거부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은 1897년생 동갑내기였지만 윤심덕은 미혼이었고 김우진은 유부남이었다. 이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동반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소식은 한국과 일본에서 대대적인 스캔들로 회자됐다. 평양 출신의..
2004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망 윤민용 기자 ㆍ카메라를 든 철학자 “나에게 사진은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포착하는, 늘 세심한 눈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드로잉은 우리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섬세한 필적으로 구현해낸다.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하는 순간적인 행위이다.” 카메라를 든 철학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가 7년 전 오늘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결정적 순간’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미학을 확립한 그는 ‘취미를 하나의 예술 형태로’ 정착시킨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였다. 1908년 8월22일 프랑스 파리 인근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브레송은 대학입학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에 연거푸 낙방한 이후 초현실주의 이론가인 앙드레 브르통 등과 교유하면서 예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앙드레 로트에게 그림 지도를 받..
1980년 컬러TV 국내 첫 출시 엄민용 기자 ㆍ총천연색 안방극장 시대 열어 40년 전만 해도 TV는 엄청난 부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의 TV는 값비싼 물건임을 뽐내듯 모양도 독특했다. 귀한 물건이 보관된 장식장처럼 문짝이 달리고, 문짝에는 열쇠까지 달려 있었다. 미녀의 각선미를 연상케 하는 미끈한 다리도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장롱에 보관해 놓고 보곤 했다. 우리나라 TV 방송이 첫 전파를 띄운 것은 1956년 5월12일이다. 최초의 TV 방송국인 HLKZ-TV는 보도·교양·오락 등의 프로그램을 하루에 2시간씩, 그것도 격일로 내보냈다. HLKZ-TV 실험방송을 본 시민들은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가 나왔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TV와 방송 산업은 5·16군사쿠데타 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민방인 동양방송이 상용..
1774년 프리스틀리 산소 발견 목정민 기자 ㆍ사람이 마셔야 하는 공기 속 기체 찾아 사람은 5분간 산소를 호흡하지 못하면 뇌사 상태에 빠지고 8분이 지나면 죽는다. 이렇듯 생명 유지에 필수인 산소. 그런데 산소가 발견된 건 겨우 237년 전이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화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1733~1804·사진)가 1774년 8월1일 공기 중에 산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프리스틀리는 커다란 렌즈로 햇빛을 모아 산화수은(Hg2O)을 연소시키자 수은과 함께 이름모를 기체가 발생하는 걸 관찰했다. 기체를 용기 안에 모아 놓고 촛불과 쥐를 넣었더니 촛불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 쥐의 움직임도 한층 활발해졌다. 자신이 직접 기체를 마시기도 했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프리스틀리는 정교한 실험을 하는 화학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산소를 발..
1890년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사망 이윤주 기자 ㆍ세상 떠난 뒤에야 세상이 그를 알았다 “고통은 영원하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버리지 못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들판에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눈 지 이틀 만인 1890년 7월29일 동생 테오도로스의 옆에서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눈을 감은 뒤에야 인상주의의 거장,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그림을 통해 하나님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체계적인 그림 공부는 하지 못했다. 900여점의 그림과 1100여점의 습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감행하기 ..
1794년 ‘공포정치’ 주역 로베스피에르 처형 김준기 기자 ㆍ끝내 단두대로 끌려간 혁명가 프랑스 혁명이 만든 발명품 중 하나가 단두대(기요틴)다. 참수형 죄수들의 고통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이 무시무시한 도구는 혁명이 고조되던 1793~1794년에만 1만7000여명의 목숨을 앗았다. 이 단두대에 가장 많은 사람을 밀어넣은 이도 결국 그 아래 목을 내미는 신세가 된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다. 1758년 북프랑스 아라스에서 태어난 로베스피에르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파리의 명문 루이르그랑 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가 학원을 방문하자 학생 대표로 환영사를 했다. 이 학생은 그로부터 18년 후 왕을 단두대로 보낸다. 고향에 돌아온 로베스피에르는 서민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명성을 쌓는다. 1789년 5월 루이 16세는 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