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어제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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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3빌딩 준공 윤민용 기자 ㆍ서울올림픽과 함께 한국 국력의 상징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1985년 7월27일 이곳에 동양 최고의 빌딩이 우뚝 섰다. 63빌딩이다. 지상 높이 249m에 지하 3층 지상 60층, 연면적 16만6000㎡. 해발 높이는 264m로 남산보다 1m 낮고 당시 동양 최고 빌딩이던 일본 도쿄 선샤인 빌딩보다 25m 높았다. 63빌딩은 88서울올림픽과 함께 강성해진 한국 국력의 상징이었다. 19세기 중반 철강을 활용한 건축공법의 발달,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초고층 빌딩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마천루는 각국의 첨단건축공법과 국력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됐다. 63빌딩은 미국 SOM사와 국내건축가 박춘명씨가 설계를 맡았고 시공도 국내기술로 해결해 당시 “한국건축술의 개가로 인정받았다”. 건물은 19..
1950년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엄민용 기자 ㆍ어린이 등 농촌 주민에 기관총 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사슴이 숨어 있는 부락이라 하여 녹은(鹿隱)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때 부락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노근(老斤)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서 맨 처음 목화를 재배했다고 해서 목화실(목화곡)로도 불린다. 사슴이 숨어 살 만큼 아늑한 이 마을에서 1950년 7월26일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다. 6·25전쟁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때, 노근리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은 노근리 철교 밑 ‘쌍굴다리’ 속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공격을 피해 몸을 숨긴 그곳이 지옥이 되고 말았다. 당시 이곳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미군 1기갑사단 예하부대는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므로 ..
2007년 탈레반, 납치한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 살해 이영경 기자 ㆍ분쟁지역서 선교하다 참변 “가즈니주 카라바그의 무샤키 지역에서 머리·가슴·배에 총탄 10발을 맞은 한국인 남자 시신이 발견됐다.” 2007년 7월25일 아프가니스탄 경찰의 발표가 외신을 타고 한국에 전해졌다. 청년신도 등 20명을 이끌고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사진)의 시신이었다. 피랍 인질들의 무사를 빌었던 가족들과 국민들은 비탄에 빠졌다. 그 해 7월14일,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와 샘물교회 청년회 신도 등 20명은 단기선교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아프간에 입국했다. 이들은 같은 달 23일까지 체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월2일에야 한국 땅을 밟았다. 2명은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에서 출발한 20명과 아프간 현지에..
1885년 미국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사망 정진호 기자 ㆍ전쟁영웅서 최악의 대통령으로 미국 대통령들의 인생은 대체로 파란만장하다.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1822년 4월27일~1885년 7월23일)의 삶도 그랬다. 미국 워싱턴주에 그의 이름을 딴 ‘그랜트카운티’가 있고 미화 5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10인’에 선정될 정도로 무능하고 끔찍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1822년 오하이오주에서 가죽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랜트는 17살 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 장교로 임관, 멕시코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웠지만 알코올 중독 탓에 불명예제대를 한다. 농사를 짓고 부동산회사를 경영하기도 했지만 잇따라 사업에 실패했다. 실의에..
1934년 미국 갱스터 존 딜린저 사살 이윤주 기자 ㆍ대공황 때 귀신 뺨치는 은행강도 대공황 시기 미국 시카고. 미국연방수사국(FBI)에는 ‘공공의 적’ 1호였고 시민들에겐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으로 인식됐던 희대의 은행강도 존 딜린저가 있었다. 딜린저는 21살이던 1924년 친구와 함께 어설프게 식품점을 털다 경찰에 체포됐다. 친구는 변호사를 통해 무죄를 호소하는 전략으로 가벼운 형을 받았다. 하지만 변호사를 쓸 수 없었던 가난뱅이 청년 딜린저는 관대한 처분을 바라고 죄를 고백했다가 1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딜린저는 당시 유명한 은행강도 해리 피어폰트와 러셀 클라크를 만나 그들로부터 각종 범죄수법을 전수받았다. 수감생활 동안 익힌 기술은 딜린저를 최고의 은행강도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뒤 딜린저는..
1994년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로 선출 김준기 기자 ㆍ화려한 등장·초라한 퇴장 그의 등장은 화려했다. 영국 노동당 최연소 당수, 20세기 영국 최연소 총리, 80%를 넘는 지지율, 노동당 역사상 최초의 3기 연속 집권 등. 그러나 10년간의 총리직을 마치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를 떠날 때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옥스퍼드 법대를 나와 변호사를 하던 토니 블레어는 좌파운동가 집안 출신의 동료 변호사 셰리 부스와 결혼하면서 노동당에 입당했다. 1983년 총선에서 당선된 후 당시 야당인 노동당의 예비 내각에서 내무, 법무, 에너지, 노동 장관을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노동당 내에서는 우파였다. 노동당이 고수하던 국유화 정책을 포기하고 분배뿐 아니라 성장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94년 5월..
1932년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출생 윤민용 기자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 실천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미디어 아트를 개척한 예술가 백남준의 지향점은 이 한 문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1950년대 그의 기이하고 전위적인 예술은 당대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당시 그의 실험은 오늘날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미술과 비미술, 전통과 현대, 예술과 테크놀로지, 동양과 서양 등의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적 실천을 벌인 유목민, 백남준. 1932년 7월20일 일제강점기 경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그저 한국, 한민족이라는 키워드로 포섭되지 않는다. 조선과 홍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한국전쟁 직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미학을 공부한 그는 유럽철학..
1947년 여운형 암살 엄민용 기자 ㆍ통일 건국의 꿈 못 펼친 거인 오늘로부터 정확히 64년 전인 1947년 7월19일 낮 12시쯤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7월의 뙤약볕을 뚫고 날아간 흉탄은 일생을 나라 걱정으로 보낸 한 거인의 가슴을 검붉은 피로 물들인다. 거인의 이름은 여운형이다. 몽양 여운형은 1918년 상하이에서 청년 동포들로 민단을 조직해 광복운동의 터전을 마련했고, 1919년에는 임시정부 수립에 힘을 보태며 임시의정원 의원이 됐다.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에도 앞장선 그는 1934년 조선체육회장을 맡아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사건을 주도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초대 대통령을 지낼 수도 있었다. 광복 직후 매일일보에서 조사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