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44)
(28) 라면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한밤중 출출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아무리 유혹을 참고 버티려 해도 옆에서 누군가 먹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 젓가락”을 연발하다 결국 찬밥까지 말아먹고 마는 마력의 음식, 바로 라면이다. 전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으로, 더불어 밥을 대체하는 대용식으로 라면이 자리매김한 지 반세기가 다 된다. 본디 라면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밀가루와 계란, 물을 반죽해 면을 뽑아 쇠고기 국물을 곁들인 라면(拉麵)에서 유래했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인스턴트 라면의 효시는 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이 대량생산에 성공한 ‘치킨라멘’이다. ‘한 젓가락’의 유혹 앞에 버텨내는 장사는 없다. 라면은 이제 온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라면기계 2대를 ..
(27) 장난감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어린이날이 다가오면서 시장과 대형마트에는 장난감이 넘쳐난다. 평소 때보다 두서너 배 넓어진 매장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정신을 빼놓고, 한편에서는 눈에 익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부모의 손을 잡아끌어 사고 싶은 장난감 앞에 선 아이들은 버티기에 들어간다. 부모들은 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떠올리며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만지작댄다. 신경전을 눈치챈 아이가 이때를 놓칠 세라 뒤로 벌러덩 눕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버릇 없다고 야단쳐보지만 ‘어린이날’인 것을 어쩌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딱지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제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매일이 어린이날 같다는 것이다. 장난감도 흔하다. TV 어린이채..
(26) 재봉틀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이 재봉틀을 믿고 원주로 왔어. 이 재봉틀 믿고 를 시작했지. 실패하면 이걸로 삯바느질한다, 다만 내 문학에 타협은 없다….” 작가 공지영씨는 생전의 박경리 선생을 원주에서 만났을 때 재봉틀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던 표정을 기억한다. 박 선생이 가장 아끼던 세 가지 물품은 재봉틀, 국어사전, 고향 통영의 목가구인 소목장이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라고 자랑한 것도 6·25 때도 들고 다녔다는 낡은 재봉틀이었다. 작가든, 재벌 부인이든 궁핍한 시절을 이겨온 어머니들에게 재봉틀은 옷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마법의 기계이자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무기였다. 밤새 침침한 눈을 비비며, 시큰거리는 어..
(25) 소풍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따뜻한 봄의 기운이 충만해질 무렵이면 소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초등학생들이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면 그건 바로 방학식 하는 날과 소풍 가는 날이었다. 소풍 날짜가 정해지면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안달복달했다. 평소 못먹던 군것질거리며 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는 소풍을 맞아 새 옷과 신발을 사주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서 새 옷을 얻어 입은 뒤에 사이다와 과자, 초콜릿 등을 집어대느라 바빴다. 엄마는 시금치와 오이, 당근, 노란 단무지와 길다란 소시지, 달걀을 샀다. 소풍 전날 밤 엄마가 김밥 재료를 밑손질하느라 바쁠 때, 아이들은 소풍가방을 싸느라 바빴다. 주머니가 잔뜩 달린 소풍가방을 꺼내서 돗자리와 과자,..
(24) 우량아 선발대회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종교는 ‘S라인’과 ‘초콜릿 복근’이다. 늘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은 어린아이들까지 다이어트로 몰아넣고 있다. 뚱뚱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왕따 되기 십상이란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부모들의 불안을 키운다. 30년 전, 아들 딸의 우량아 선발대회 입상을 노리던 부모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터. ‘작게 낳아 크게 기르겠다’며 열심히 운동하는 임신부 며느리,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손자 손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는 1971년 문화방송과 남양유업 주최로 처음 열렸다. 83년까지 계속된 이 대회는 해마다 어린이날을 앞둔 4월 이맘때 시도별 예선을 ..
(23) 월급봉투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요즘 최고의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망받는 공무원. 1975년도 공무원의 월급은 얼마나 됐을까. 당시 경상북도 문경군청 소속 4급 을류(현재 7급 해당) 공무원으로 일했던 김병옥씨가 최근 ‘문경인터넷뉴스’에 공개한 봉급 명세서를 보면 본봉 3만690원, 수당 8500원, 여비 1만1870원, 일·숙직비 400원(계 5만1460원)에, 공제내역은 기여금 1688원, 대한교육 900원, 제일생명보험 700원, 이동조합 2346원, 직장금고 100원, 신문대금 1150원, 전별금 500원, 축의금 300원(계 7884원)으로 기록돼 있다. 실제 수령액은 4만3576원. 35년 전이긴 하나 5만원이 못되는 돈으로 저축도 하고 술도 마시며 살았다. ‘박봉’이라도 ..
(22) 아침 조회 윤성노 기자 ysn04@kyunghyang.com 일요일을 쉰 터라 친구가 보고 싶지만 아침 조회만 생각하면 꾀병이 났다. 학습시간표에 엄연히 월요일 1교시는 조회 시간이다. 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각이고, 결국 개근상을 받을 수 없다. 성실성이 기본 덕목이던 1960~70년대엔 우등상보다 개근상을 더 쳐줬다. 부모가 먼저 나서 ‘아파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고 할 때였다. 제 몸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국민이 되게 하는 게 교육이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라고 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72년 제정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단행한 해다. 2007년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
(21) 구멍가게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평생 계속할 것 같던 구멍가게의 문을 닫던 날, 우리 식구 중 한 명도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을 어떤 때는 질퍽하게, 또 어떤 때는 차지게 만들어 주었던 구멍가게…. 힘들고 고단했지만 부모님의 땀과 정성, 그리고 우리 오남매의 유년과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작가 정근표씨는 구멍가게 집 둘째아들이었다. 그는 구멍가게를 배경으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기록한 ‘구멍가게’를 펴냈다. 책이 나오자마자 그는 구멍가게 주인이었던, 지금은 팔순이 다 된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책장을 넘겨보기는커녕 아예 집에 두지도 말라고 했다. 새벽녘부터 자정이 넘도록 일에 치여 고생한 아내와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