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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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강남 아파트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강남은 그때는 시골이죠. 솔직히, 벌판이었어요. 누이동생이 와가지고 막 울더라고요. 오빠가 어떻게 돼서 이런 데 사느냐고. 시골 갔다 오면 버스에서 내려 소변 보던 데예요. 화장실이 없으니까. 그때는 강남도 아주 형편없었죠.” 최근 출간된 이라는 책에서 홍순하씨(1932년 종로구 청진동 출생)는 이렇게 회고한다. 여든 가까운 어르신의 추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슷한 기억이 있다. 서대문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조금 과장하면, 하룻밤을 자고 나면 급우 한두 명씩이 전학을 갔다. 주로, 부촌으로 손꼽히던 연희동의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 살던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행선지는 대부분 압구정동과 반포동, 서초동의 아파트였다. 울며 떠나간 친구들 가운데는..
(19) 버스 차장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서울시는 지난해 3월17일부터 10일간 ‘해피 버스 데이(Happy Bus Day)’란 캠페인을 벌였다.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 151번 버스에 안내양을 배치해 친절 서비스를 보이는 이벤트였다. 젊은이들은 신기한 눈빛을 보냈지만 과거의 버스 안내양, 아니 ‘뻐스 차장’을 기억하는 중장년층들은 가슴 한쪽이 뜨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1970~80년대 우리가 만난 버스 차장은 ‘해피’한 직장여성이 아니라 하루하루 고단한 삶과 싸우는 슬픈 눈빛의 생활전사였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군의 버스에서 차장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안군은 관광 홍보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2006년 차장(안내양) 제도를 부활했다..
(18) 미니카세트 ‘워크맨’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지난해 영국 BBC 매거진에 mp3플레이어 ‘아이팟’ 대신 일주일간 미니카세트 ‘워크맨’을 써본 13살 소년의 체험기가 실렸다. 소년은 테이프의 반대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사흘이 걸렸으며 카세트테이프의 재질에 따른 종류를 뜻하는 메탈/노멀 스위치를 이퀄라이저로 오해했다고 고백했다. 원하는 곡을 듣기 위해 되감기와 빨리감기 버튼을 마구 눌러대다 아버지로부터 “(그러다) 워크맨이 테이프를 먹는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간 음악 없이 지냈다고 썼다. 소니의 초기 워크맨. 버튼 하나만 누르면 손쉽게 작동되는 요즘 mp3플레이어를 사용하는 10대들에게 미니카세트는 낯설고 불편한 기기다. 그렇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청소년들에게 미니카세트는 꿈의 기기였다. 일..
(17) 시계 김후남 기자 hoo@kyunghyang.com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생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회중시계가 오는 10일 경매에 나온다는 보도가 있었다. 스위스의 고급 시계 브랜드인 바셰론 콘스탄틴에서 제작한 것으로, 뒷면에 대한제국 문장인 ‘이화문(李花紋)’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당시 이러한 시계 한 개 값은 서울의 작은 기와집 한 채 값에 맞먹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것으로 추정되는 회중시계 | 연합뉴스 순종은 시계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순종이 거처하던 창덕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계가 있었다. 순종은 이 시계들이 시간을 알리기 위해 각기 다른 소리로 한꺼번에 울릴 때 매우 즐거워한 반면, 하나라도 종이 앞서거나 늦게 울리는 날이면 언짢아했다고 한다. 그는 덕수궁에 머물..
(16) 입학 윤성노 기자 ysn04@kyunghyang.com 다음주면 각급 학교에서 입학식이 치러진다. 옛날 초등학교 입학식 땐 코흘리개들이 거즈 손수건(신입생이라는 표지이자 코를 닦는 용도이기도 하다)을 가슴에 달고 ‘앞으로 나란히’를 했다. 부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보지만 꾸중 가득한 엄마 아빠를 쳐다보고는 이내 주눅 들어 동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처음 보는 동무, 어색하던 것도 잠시. 아예 뒤돌아 장난질하느라 선생님 구령은 뒷전. 부스대는 아이들 열기에 언 땅도 제풀에 녹아 운동장은 온통 진창이다. 봄냄새 맡은 병아리처럼 아이들은 ‘하나, 둘’ ‘셋, 넷’ 선창에 후렴을 붙이며 교실로 들어갔다. 코 흘리며 동네를 쏘다니던 아이들은 봄마다 그렇게 학생이 됐다. 1960년대 말이니까 ‘초등학교’가 아니라 ..
(15) 양장점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요즘은 여고 졸업선물로 쌍꺼풀 수술을 해준다지만, 1970년대까지는 엄마들이 졸업하는 딸의 손을 잡고 양장점을 찾곤 했다. 칙칙한 교복 대신 산뜻한 투피스나 원피스를 입혀, 소녀에서 숙녀로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온갖 원단과 패션잡지가 가득한 양장점에서 주인은 마법의 양탄자를 펼치듯 옷감을 펼쳐보이고 디자인을 설명했다. 1975년 양장점이 밀집된 서울의 거리. 경향신문 자료사진 “처음엔 이런 감색 정장이 단정해보이지. 같은 감으로 후레아(플레어) 스커트를 하나 더 맞춰 블라우스를 잘 받쳐 입으면 여러 벌의 효과를 낸다니까. 이탈리아 원단이 좋긴 하지만 비싸니까 국산도 괜찮아요. 얼굴이 예뻐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겠네….” 칭찬에 우쭐해진 모녀는 디자인을..
(14) 도시락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수업시간보다 점심시간에 먹던 ‘도시락’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땐 왜 그리 자주 배가 고팠을까. 점심시간에 먹어야 할 도시락을 2교시만 끝나면 허기져서 꺼내들곤 했다. 다이어트 열풍에 새처럼 조금 먹는 요즘 소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양은 도시락통에 꾹꾹 눌러 담은 밥과 멸치볶음, 노란 무짠지, 콩자반 등 소박한 반찬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어머니는 거버 이유식병이나 맥스웰 커피병에 김치를 담아주셨다. 때론 가방 속에서 허술하게 잠긴 김치 병뚜껑이 열려 버스 안에서 냄새가 진동할 땐 하얀 옷깃의 청초한 여학생 얼굴이 김치국물처럼 벌게졌다. 도시락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시락밥과 표주박 물을 뜻하는..
(13) 목욕탕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한번씩 뜰채가 등장했다. 목욕탕 주인장은 긴 장대에 그물망이 달린 뜰채를 들고와 몇 차례 물위를 가로질러 둥둥 떠있던 ‘그것들’을 건져내곤 했다. 잠시 탕 밖에 나가있던 사람들은 다시 탕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콩나물 시루처럼 비좁은 목욕탕은 사람들로 붐벼 엉덩이 붙일 데가 없었다. 특히 설날을 앞둔 목욕탕은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꼭 한번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실상은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고 목욕탕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깨끗한 몸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조상을 모시겠다는 순박한 마음들이 벌거벗고 장사진을 이뤘다. 목욕탕에서 씻어낸 것이 몸만은 아니었을 터. 요즘 아이들에게 구식 목욕탕은 체험학습 삼아 가볼 만한 곳일지도 모른다. 첨단 시설의 찜질방과 놀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