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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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력 윤성노 기자 ysn04@kyunghyang.com 01/10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기일(忌日)이나 생일은 음력으로 쇴다. 여성들은 시집 가면 시댁 식구의 음력 생일과 기일을 물려받아 챙겨야 했다. 하지만 양력으로 생활하다보니 음력은 잊고 살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특히 맏며느리는 달력에서 음력을 찾아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거나 ‘할아버님 제삿날’ ‘아버님 생신’이라고 적어놓고서야 새해를 맞았다. 달력은 70년대 말까지도 흔한 물건이 아니어서 새해 선물 노릇을 톡톡히 했다. 번듯한 회사라도 다녀야 회사 달력을 타오지, 그렇지 않으면 은행이나 업소에서 주는 달력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하루살이 서민들에게 거래 은행과 업소가 있을 리 만무하니 달력이 귀할 수밖에 없었다. 농촌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게 달력이어..
(3) 전화 유인경 선임기자 “보고 싶어요, 엄마. 하늘나라에서도 제 목소리 들리세요?” 드라마 에서 처음으로 집 전화가 개통돼 온동네가 떠들썩하던 날, 어머니(김혜자)는 가족들이 잠든 밤에 홀로 전화기를 붙들고 돌아가신 친정엄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전했다. 새 학년이 되면 담임선생님이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텔레비전 있는 사람…손들어봐요”란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마다 번쩍 손드는 학생들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이장희는 히트곡 ‘그건 너’에서 헤어진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라고 노래했다. 신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불과 30여년 전의 풍경이다. 대한민국에 전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6년. 이듬해 고종은 자신의 침소와 정부 각 부처를 잇는 전화..
(2) 우유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 아침이면 대문 앞에 배달된 우유를 가지러 나가기가 정말 싫었다. 일단 날이 추워 움직이기 싫은 데다 만지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우유병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우유를 들고 집안에 들어오면 아침식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 뒤로 가서 우유를 데워먹겠다고 난리법석을 부렸다. 중탕할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뒤, 그 물에 우유병을 데우면 끝이었지만 이따금 병이 깨져 난감할 때도 있었다. 1970~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갖고 있을 추억이다. 그땐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보급소에서 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학교에서도 급식으로 신청해 마셨다. 그 시절 우유는 어린이들이 먹고 자라야 할 완전식품의 ..
(1) 토정비결- 힘겨운 서민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다. 국치 이후 이 땅에선 식민, 분단, 군부독재, 산업화, 민주화의 고비고비가 이어졌다. 그 사이 우리네 생활상도 몰라보게 바뀌었다. 지난 100년간 필부필부들의 삶과 추억을 만든 풍속과 유행, 애용품을 통해 일상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옛것을 보냈으니, 새것을 맞아들일 일이다. 그러나 새것을 맞는 것은 설레는 만큼 걱정스럽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정초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곤 했다. 올 한 해 우환은 없을까, 손재수는 없을까, 한 해의 신수(身數·몸의 운수)를 점쳤다. 점집에 가면 평생의 사주팔자까지 다 봐주지만 복채도 싸고 점괘도 알기 쉬운 토정비결이 신수풀이엔 그만이다. 토정비결은 신수를 점치는 책이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기인으로 알려진 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