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2) 우유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 아침이면 대문 앞에 배달된 우유를 가지러 나가기가 정말 싫었다.

일단 날이 추워 움직이기 싫은 데다 만지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우유병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우유를 들고 집안에 들어오면 아침식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 뒤로 가서 우유를 데워먹겠다고 난리법석을 부렸다. 중탕할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뒤, 그 물에 우유병을 데우면 끝이었지만 이따금 병이 깨져 난감할 때도 있었다.

1970~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갖고 있을 추억이다. 그땐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보급소에서 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학교에서도 급식으로 신청해 마셨다.
그 시절 우유는 어린이들이 먹고 자라야 할 완전식품의 대명사였다. 소화가 안되는데도 억지로 먹은 건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크고 뼈가 튼튼해진다고 해서였다. 어쩌다 딸기우유나 초코우유가 급식으로 나오면 진짜 딸기나 초콜릿을 먹듯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이 땅에서 음식으로서의 우유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에서 소젖을 넣은 타락죽을 보양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우유는 사람이 아니라 농경시대 노동력을 제공하던 소의 먹거리였다.


1972년 한 우유 배달원이 자전거에 실은 짐 상자에서 배달할 우유를 꺼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유가 사람이 먹는 식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근대기 이후다.

본격적인 낙농업은 일제시대 시작됐다. 메이지유신 후 서구를 따라잡겠다며 유제품 소비를 권장하던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우유를 마시던 일본인들의 식습관이 일본인들의 한반도 이주와 함께 유입되면서다.
일본인들이 몰려살던 충무로나 명동과 가까운 서울역 일대, 철도업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청량리 일대에는 목장이 들어섰다. 이런 수요에 맞춰 최초로 우유를 시판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청량리 농유조합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15명이 합작·설립한 조합은 각자 목장에서 짜낸 우유를 커다란 가마솥에 모아 끓인 후 냉각시켜 병에 담아 배달했다.

우유의 대량생산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현 서울우유 전신)이 설립되면서 이뤄졌다.
조합은 서울 정동(현 정동극장 자리)에 우유공장을 짓고 우유를 독점 생산했다. 서대문과 동대문, 남대문을 지나 우마차와 자전거 등에 실린 원유가 매일 정동으로 수송됐다. 당시 우유는 1홉(180㎖)짜리 유리병에 담겨 판매됐다.
해방과 6·25를 거친 후 60년대 정부의 낙농장려정책에 따라 젖소가 다량 수입되고 고온살균법 등 우유처리기술이 수입되면서 우유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서울우유 외에 남양유업, 매일유업, 빙그레 등 현존하는 유가공업체들이 모두 이 무렵 설립됐고 분유, 연유, 버터, 치즈, 아이스크림 등 유가공품의 대량생산도 시작됐다.

향과 맛을 더한 가공우유는 유단백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부족한 한국인들의 우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개발됐다. 서울우유가 68년 초코우유를 시작으로 커피우유, 딸기우유 등을 내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공우유의 베스트셀러는 바로 ‘바나나맛 우유’이다. 74년 처음 시판된 바나나맛 우유는 당시 어린이들의 ‘로망’이던 바나나를 연상시켜 마케팅에 성공했다. 출시 36년이 된 지금도 국내 가공우유 시장에서 부동의 1위이며 국내 편의점 판매상품 중 매출액이 가장 높다.

단지우유, 배불뚝이 우유 등의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독특한 용기 디자인 역시 인기의 비결이었다. 이 디자인에도 한국 근대사의 한 단면이 새겨져 있다. 70년대 산업화 바람으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넉넉한 전통 항아리의 선에서 용기 모양을 착안했다고 한다.

67년 13원(180㎖)이던 흰 우유가 이제는 한 팩(200㎖)에 700원. 새벽녘이면 골목마다 자전거에 우유를 싣고 배달 다니던 고학생들은 사라지고 대형 마트의 우유 진열대에는 갖은 성분을 더하고 지방을 뺀 우유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우유 = 완전식품’의 신화를 깨뜨리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목욕탕에서 마시던 달콤한 바나나맛 우유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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