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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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금융실명제 1993년 8월12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헌법 76조 1항에 의거해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했다. 김 대통령은 “모든 금융거래에 대한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해방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경제조치로 꼽히는 금융실명제가 전격 도입되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에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 없으며 이 땅에 진정한 분배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그해 8월13일자 1면 톱기사와 2·3면에 걸쳐 ‘금융실명제 전격 단행’ 소식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금융실명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검은돈의 거래를 차단해 금융거래를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
1992년 8월 한·중 수교 경향신문 1992년 8월25일자는 역사적인 한·중 수교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신문은 당시 24개 면 가운데 9개 면을 할애해 한·중 수교의 의미와 평가,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1992년 8월24일,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은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과 양국 정부를 대표해 외교관계 수립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협정에 서명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으로 두 나라가 총부리를 겨눈 이후 42년 만에 공식적으로 적대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신문은 중국 국영 CCTV가 서명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한 사실과 이상옥 장관이 양상쿤(楊尙昆) 당시 국가주석, 리펑(李鵬) 총리 등 중국 지도부를 예방한 소식을 상세하게, 그리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전하고..
1992년 12월 ‘초원복집’ 김기춘씨 소환 14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1992년 12월18일 경향신문은 사회면에 ‘김기춘씨 등 21일 소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부산지역 기관장의 민자당 김영삼 후보 지지모임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는 17일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6명 중 김기춘 전 법무장관등 4명을 21일 소환 조사키로 했다. … 검찰은 이 모임 참석자와 모임이 있었던 ‘부산초원복국집’ 주인에 대해서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수사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초원복집 사건이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11일 부산 초원복집에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를 당선시키자고 모의한 사건이다. 뒷날 유행했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이 자리에서 나왔다. 사건 모의..
1999년 11월 김우중 대우 회장 사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89년에 펴낸 자서전 에는 ‘생각대로 되는 세상’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세계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써왔던 그는 외환위기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전까지 글 제목처럼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1999년 11월2일자 1면에는 ‘김우중 대우 회장 사퇴’ 기사가 실렸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김우중 대우회장이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물러난다”고 보도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주)대우,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의 퇴진은 개발연대가 이뤄낸 ‘성장신화의 종언(終焉)’을 의미했다. 1960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성실업에서 6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김 전 ..
1953년 7월 정전협정 1953년 7월28일자 경향신문은 1면 전체를 역사적인 한국전쟁 휴전에 할애하고 있다. ‘냉전의 고민, 휴전에 조인’ ‘좌절된 한국의 통일염원’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는 “한국정부와 인민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조인 장면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기사는 “27일 오전 10시, 양측 대표는 공산 측이 지은 목조건물 양쪽에서 입장했다. 남쪽에 마련된 3개의 청색 테이블 중 동쪽 테이블에는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이, 서쪽 테이블에는 공산 측 대표 남일이 중앙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3년1개월, 휴전회담이 시작된 지 2년반 만에 정전협정을 맺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조인식은 악수나 웃음은 물론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
이순자씨 30억 땅 확인 검찰이 지난 16일부터 연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을 비롯해 친·인척의 회사·자택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전씨가 숨겨놓은 비자금의 전모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이 전씨의 숨겨놓은 재산 찾기에 나선 것은 1997년 4월 대법원이 전씨에게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이후 16년 만이다. 전씨는 법정 추징금 가운데 24%인 533억원만 납부했으며 아직까지 1672억원은 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납부할 재산이 없다’는 게 전씨의 변이다. 그는 2003년 법원에 출석해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이 29만1000원밖에 없다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전씨의 이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1989년 경향신문의 단독 기사에서 확인된다. 그해 2월16일 경향신문은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의 이..
개성공단 착공식 “남북경협의 새 장이 열리게 됐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직접 투자는 물론 경의선 연결과 맞물려 남북경협을 본궤도에 올려 놓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전인 2003년 6월30일 경향신문 1면에는 개성공단 착공식 기사가 실렸다. 개성공단 착공식이 열리게 된 것은 2000년 8월 정몽헌 현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개성지역에 2000만~4000만평 규모의 공업지구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지 거의 3년 만이었다. 개성공단 조성은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측의 현대아산과 북측의 아태평화위원회가 ‘개성공업지구건설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것이 단초가 됐다. 그 이후 북측이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법’을 공포함으로써 구체화됐다. 경향신문은 개성공단 착공식 기사에서 “개성공업지구는 평양..
1990년 2월 만델라 석방 경향신문은 1990년 2월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흑인인권운동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바로 전날인 11일, 27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71세. 남아공 백인 정권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한 덕분이었다.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 활동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반대운동을 주도했다가 1962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케이프타운 앞바다 로벤섬 교도소의 4.5㎡ 독방에서 19년, 케이프타운 교외 폴스모어 교도소에서 8년을 각각 지낸 뒤 풀려난 것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풀려난 직후 케이프타운 축구장에 몰려든 12만명의 지지자에게 무장투쟁을 통해 백인 소수통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무장투쟁이 아니라 비폭력주의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당시 남아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