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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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엔저 쇼크 “세계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이 달러당 100엔대를 넘어서며 엔화가치가 급격히 약화되자 기업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이 문장만 보면 아마도 대다수의 독자는 요즘의 얘기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18년 전인 1995년 9월16일 경향신문 9면 머리기사 내용이다. ‘엔저…기업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면서 엔고로 올 상반기 수출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증가하는 호황을 누려온 자동차 업종도 엔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사에는 자동차 11.6%, 가전 11.2%, 기계 8.1% 등 엔화가 10% 절하됐을 경우를 상정한 업종별 수출 감소폭 표까지 싣고 있다. 수치만 다를 뿐 엔저를 바라보는 요즘 업계 시각과 큰 차이가 없다. 기..
1972년 문교부의 혁명적 입시 방안 고교 내신성적의 대학입시 반영은 최근에 나온 정책이 아니었다. 40여년 전에도 있었다. 경향신문 1972년 4월17일자 5면을 보면 문교부(지금의 교육부)는 그날 1973학년도 대학 신입생 전형지침을 전국 97개 대학에 ‘시달’했다. 예비고사 성적과 중·고교 성적 내신을 대학 입시에 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문교당국자는 “고교 교육이 대학 입학 출제 문제 등에 크게 좌우되는 실태를 감안하면 다소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제도 개선으로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해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기왕의 대입시험이 국·영·수 등 ‘주지 과목’에만 편중돼 고교에서 지·덕·체를 골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 방법이 외면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뜻은 좋았지만 소위 ‘5대 공립고교’니 ‘5대 사립고교’가 오..
1983년 4월을 흔든 ‘대도’ ‘대도’ 조세형이 재판 도중 탈주했다가 붙잡혔다. “경찰이 추격하자 조는 가정집으로 뛰어들어 대학생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19일 상오 10시24분 경찰의 총에 맞고 붙잡혔다. 현재 서울 백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는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1983년 4월19일자 1면) 30년 전인 1983년 4월, 세상은 조세형으로 떠들썩했다. 조세형은 4월14일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엿새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이다 붙잡힌 조세형은 “무기구형이 억울해 탈주했다”고 항변했다. 조세형은 탈주 직전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 “나는 세상 사람이 화제로 삼는 물방울 다이아 등 도둑질은 많이 했으나 피해자는 물..
1963년 ‘콩나물 교실’ 조호연 사회 에디터 “한 교실에 80명, 90명씩 집어넣는 현상은 부득이한 것이겠지만 전 세계에 유례없는 일이에요. 일본만 하더라도 학급당 인원이 40명 정도입니다. 그들은 이 숫자도 많다고 야단인데 우리나라는 2배가 넘으니….” 경향신문 1963년 10월23일자는 7면에 유진오 대한교육연합회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총의 옛 이름)의 인터뷰를 실었다. 소설가, 법학자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현민 유진오 박사다. 유 회장은 인터뷰에서 한국의 콩나물 교실의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다. 그는 “취학 아동은 매년 느는데 국민학교의 부족 교실은 3만 교실이 넘고 한 교실에 콩나물시루같이 80, 90명을 집어넣고는 절대로 교육이 안 됩니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외국 사람들은 하품을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콩나물..
박정희 정권 최대 성 스캔들 ‘정인숙 피살’ 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 1970년 3월17일 늦은 밤 서울 마포 절두산 아래 ‘강변 3로’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하오 10시45분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39 강변 3로에서 서울자2~262호 검은색 승용차(코로나)를 운전하던 정종욱씨(31)와 정씨의 누이동생 인숙양(26)이 4·5구경 권총에 맞아 왼쪽 귀밑에 관통상을 입은 인숙양이 숨졌고 정씨는 오른쪽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경향신문 1970년 3월18일자 7면) 미모의 20대 여성이 오빠와 함께 심야에 자가용을 타고 가다 권총으로 피살당한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대중의 관심을 끌 요소를 지녔다. 경찰은 원한이나 치정 등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추정해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살당한 정인숙씨의 신상이 알려지면서, 단순 사건이..
전두환과 공정거래법 박용채 경제 에디터 1980년 9월19일 당시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군인 전두환이 국보위 위원장을 거쳐 대통령이 된 지 3주가 채 안 된 시점이다. “정부는 공정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연내에 제정키로 했다. (중략) 이를 위해 준사법적 권한을 갖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신설하고, 규정을 위반할 경우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 해 12월 공포를 거쳐 이듬해 4월 법이 시행됐다. 작품은 김재익 경제수석의 손에서 나왔다. 전두환의 경제과외 선생이던 김 수석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다 83년 아웅산테러로 유명을 달리했다. 개발독재는 한국 경제를 양적으로 성장시켰지만 불균형 확대, 시장기능 왜곡, 독과점적 구조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조호연 사회에디터 chy@kyunghyang.com 작은 체구에 깡마르고 날카로운 눈매의 40대 남자가 연단에 올랐다.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는 뾰족하고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취임 연설을 시작했다. 50년 전인 1963년 12월17일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는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엄숙하게 열렸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력을 쥐고 군림하는 자가 되지 않고 국민의 충복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통합과 국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럴 만도 했다. 가까스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43%를 득표했고, 야당 후보는 41%를 얻었다. 박 대통령이 5·16쿠데타 후 2년7개월간 강력한 군사통치를 한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