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점·선’ 이우환…10여년 뒤 “모작? 내 그림은 내가 안다”

그림인데 그림 같지 않다. 텅 빈 공간에 두어개 점이 그림의 전부인가 하면, 점으로 모여진 선이 바람에 날리듯 화폭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점과 선의 조화로 형상이 없는 사유의 세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노크롬(단색조) 화가인 이우환의 그림이다. 경향신문은 199491일자 13면에 국제화단에서 주목받는 이우환의 전시회를 소개했다.

 

경향신문DB

그의 작품은 쉽지 않다. 이를 아는지 그는 언뜻 보았을 때 생소할 수 있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휑뎅그렁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작품세계를 처음 접한 사람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다만 뭔가 새로운 울림이 있더라는 느낌만 가져가면 만족한다고 했다.

 

호평만 있던 것도 아니다. ‘()의 현대화라는 이우환의 회화론에 대한 비판이다. 노장의 무위자연주의에 입각한 동양적 순수회화라는 그의 주장은 서양 행위미술이 나타난 이후에 무임승차한 추종적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잔바람에 그쳤고, 그는 거목으로 우뚝 섰다.

 

이우환의 그림은 그가 걸어온 삶의 발현이다. 그는 청년기 미술과 문학에 심취했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부문 가작으로 뽑히기도 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소설 부문 후보로 올랐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할 성적이 되지 못해 서울대 미대로 진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심부름으로 삼촌에게 약을 전해주러 일본에 갔다가 주저앉았다. 그는 꿈인 문학가로서의 지적 토양을 쌓기 위해 니혼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일본말로 시와 소설을 쓴다는 데 한계를 절감하고 꿈을 접었다. 우연히 어릴 때 배운 그림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인연이 돼 하기 싫었던 미술에 평생 발목이 잡혔다.

 

그는 1960년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일본 현대미술인 모노하(物派) 운동의 이론적 바탕을 다졌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평론에서 창작활동으로 지평을 넓혔다. 1970년대 시리즈와 시리즈로 시작해 1980년대 중반 이후 몰입했던 바람연작과 1990년대 조응연작 등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111월 초부터 20152월 말까지 세계 경매시장에서 그의 그림은 낙찰총액 4972만달러(581억원)를 기록했다. ‘100’에 든 한국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유명 작가에게 위작 논란은 숙명이다. 위작이 가장 많이 발견된 작가는 이중섭이고, 이어 천경자, 박수근이다. 수년 전부터 이우환의 모작이 미술시장에 나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달 초 경찰은 그의 작품으로 거래되다 압수된 작품 13점을 모두 가짜로 판정했다. 이우환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며 귀국해 지난 27일 경찰에 나와서 검증했다.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축적된 수행과 훈련의 결과이며 점 하나 찍기 위해 하루 종일 씨름하는 고통의 산물이다. 진품의 탈을 쓰고 활보하는 모작들의 가면이 벗겨지길 기대한다.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