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이 다시 법안에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지난 7일 발의한 ‘전재용 방지법’이다. 형법 69조2항을 개정한 이 법안은 벌금 미납자의 노역장 유치 한도를 현재의 3년에서 6년으로 두 배 늘리도록 했다. 벌금 회피 수단이 된 ‘황제노역’을 겨냥한 것이다. 2014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이 일당 5억원으로 손가락질 받은 황제노역의 불씨는 전직 대통령 아들이 일당 400만원의 노역(965일)을 하며 다시 지펴졌다. 교도소에서 하루 8시간 봉투나 쇼핑백을 접고 제초 작업을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노역 기간을 최대 3년까지 정해 벌금 많은 사람은 보통사람(5만원)보다 수십·수천배의 일당을 받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전재용씨(52)도 10년 전 임목비(나무값)를 부풀린 다운계약서로 외삼촌 이창석씨와 땅을 매매하다 세금 포탈로 받은 벌금 38억6000만원을 뒤늦게 지난 1일부터 몸으로 때우고 있는 중이다. 12일 만에 탕감 받은 벌금만 5000만원에 육박한다. 공분을 사는 그들만의 ‘로열패밀리 셈법’이다.
전씨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2005억원의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6년 법정에 설 때까진 그도 ‘0.1% 금수저’의 길을 걸었다. 1991년 2월12일 경향신문 ‘인물광장’에 처음 등장한 그의 상자기사 제목은 ‘전씨 차남 재용씨 대우 수습사원 근무’(사진)였다. 미국 조지타운대 유학을 다녀와 (주)대우 섬유수출부에 막 출근했을 때다. 전씨는 40만9000원의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봉투째 갖다드렸더니 무척 대견해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 밝힌 첫 월급 40만원의 ‘감동’은 머잖아 식어버렸다. 전씨는 2004년 ‘전두환 비자금’ 73억원을 국민주택채권으로 갖고 있다 서게 된 법정에서 “(1987년 12월 청와대에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딸과) 결혼할 때 받은 축의금 13억원을 외할아버지 이규동씨가 불려준 돈”이라고 말했다. 2004년 당시 현금 가치로도 130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13억원의 비공개 축의금과 40만원의 첫 월급이 대비된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비자금은 그 후에도 전씨의 삶 고비고비마다 돌출했다. 200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번째 아내인 탤런트 박상아씨와 ‘비밀결혼식’을 할 때도 괴자금의 꼬리가 잡혔다. 전두환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한 2013년 6월27일 그는 이태원 빌라 두 채를 시가보다 10억원 싸게 급매물로 내놓았다. 2014년 9월엔 112만달러의 미국 재산(LA 뉴포트비치 주택+투자이민채권)이 몰수됐고, 세입자들과 마찰을 빚다 서울 서소문동에 건물 5채를 갖고 있던 사실도 드러났다. 자녀의 외국인학교 부정입학으로 아내가 1500만원의 벌금을 내는 뉴스 끝에도 비자금을 추적당하며 잠행 중인 그의 일상이 그려졌다.
‘못 내나, 안 내나.’ 전씨는 지난해 11월 “벌금 40억원을 분납하겠다”고 검찰에 밝혔다가 뒤늦게 일당 400만원의 노역을 택했다. 벌금을 내면 은닉 재산의 꼬리가 밟힐 수 있는 궁색한 처지 탓일 수도 있다. “전 재산 28만원”이라는 아버지는 연희동 저택에 살고, 노역하는 아들은 이태원 빌라에 주소를 두고 있다. 1000억원 넘게 미환수된 비자금의 추징이 끝날 때까지 숨바꼭질처럼 계속될 부자의 닮은꼴 운명이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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