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유기정의 '옛날신문'

같은해 치러진 역대 총선과 대선

 

올해는 총선과 대선 두 개의 큰 정치일정이 잡혀 있어 그 어느때 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번 총선은 2008년 촛불집회부터 20106.2지방선거까지 있었던 반MB 정권심판이 선거 최대이슈인데요. 그중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가장 큰 여야간 논쟁거리가 되고 있던 가운데 야당 후보의 막말파문으로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안갯속 이네요. 어느 정권에서나 했었다고 주장하는 민간인 사찰은 선거정국 뿐만아니라 향후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판단은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의 몫입니다. 제정신 차리고 투표해야 겠습니다.

우리의 헌정역사를 살펴보면 같은해에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었던 해가 다섯번 있습니다. 19605대총선과 제4대 대통령선거부터 718대총선과 제7대대선, 7810대총선과 제9대대선, 8111대총선과 제12대대선, 9214대 총선과 제14대대선이 있었습니다. 이중 대통령 직선은 603.15 부정선거를 제외하면 두번 입니다. 197153.2%의 지지를 얻은 7대 박정희대통령과 9242%의 지지를 얻은 14대 김영삼대통령입니다.

1960년에는 대선이 두차례, 직선은 아니지만 부정선거 이후 4.19혁명으로 무효처리되고 의원내각제로 바뀌면서 다시 치러진 국회의원 간선입니다.

그때 가장 큰 이슈는 부정선거로 인한 학생혁명입니다. 불의를 참지못하는 학도들에 의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마산고등학교 김주열학생이 경찰에 학살되는 일이 도화선돼 마산시민의 궐기가 이어졌습니다. 자유당 정부는 의거를 빨갱이 폭동으로 몰았고 신문기자. 검사 까지도 등급으로 분류하여 제거할 계획을 가졌음에도 결국 시민의 분노에 이승만정권은 몰락했습니다. 당시의 총선은 대통령 대신 내각으로 권력구조가 변경되고 제2공화국을 담당할 정부를 선택하는 선거였던 만큼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14개정당.사회단체가 입후보자를 출마시키는 정치과열현상을 나타냈고 제헌이래 처음 민.참원 양원의원을 동시에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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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전이 종반에 이르자 별별 수단이 튀어나왔는데요..때아닌 해골이 등장, 내용인즉 김해구에서 참의원 후보자들이 개인연설회를 하는 장터 한가운데 절에서 나무상자에 담겨진 백구십이구의 6.25 당시 피살된 보도연맹원의 해골을 늘어놓은 진경을 보인 것이다. 합동위령제도 아닌 날에 해골을 늘어놓은 것은 선거운동의 한 방편이 아닌가 하여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 암튼 해골이 등장한 것은 한국이 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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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은 4월에 대선, 5월에 총선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김대중의 격돌은 지역감정에 불을 붙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총선의 쟁점은 3선개헌으로 굳어진 3차당선의 가부와 원내안정세력 확보냐 아니면 원내견제세력 확대냐 하는 점에 집약됩니다. .. 지금과 다를바 없이 정책대결은 뒷전이고 여당의 치적과시 야당의 비리폭로가 선거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공화당이 내세우는 최대 이슈는 안보와 통일문제이고 신민당이 내거는 최대 이슈는 빈부격차와 사회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대선 직전 터진 간첩사건등 이 시대 안보를 뛰어넘을 화두는 없었습니다. 대선은 79.8%의 투표율을 보였고 박정희대통령이 56대에 이어 7대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신민당은 대선패배와 당내 불협화음으로 총선또한 전체 204석중 113석을 공화당에 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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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4대 총선은 90년 민정.민주,공화당 통합이후 처음 실시 되는 국회의원 선거로 3당합당론 심판 핵심쟁점이었습니다. 민주당은 투표율 향상을 위해 데이트는 투표후에. 등산도 투표후에라는 스티거를 대량배포해 젊은층의 투표를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집권당 민자당은 유력대권후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선거를 지휘했지만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러나 그해 대선에서 초원복집 사건과 같은 대형변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선거 종반 역풍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923172면                                                           92년 12월 16일

                                            

며칠후 411일 총선은 1992년 이후 20년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해에 치러지며 총선결과는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30년 동안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에서 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총선은 이겨도 걱정 져도 걱정이라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승자의 오만을 견제할지 같은해 시차가 짧아 더욱 탄력을 받을지는 모를일이지만 어떤 경우이든 그것은 엄중한 民心의 결과입니다. 투표 꼭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