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유기정의 '옛날신문'

옛날신문으로 보는 부마항쟁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부마항쟁을 하루 앞두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고 피해를 입으신 분들과 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9월 말 인혁당 사건과 과거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사과에 이어 두번째죠. 


부마항쟁은 어떤 사건일까요? 

부마항쟁은 1979 10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말합니다. 

시위대는 유신체제 타도를 외치며 파출소방송국 등을 공격하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까지 시위가 확산됐습니다. 

부산지역에는 계엄령이 떨어지고 공수부대가 동원되어 시민과 학생에 대해 무차별 진압이 이루어졌죠. 시위는 단시일에 진압됐지만 10 26일 민심 이반 현상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도중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 살해해 유신정권의 막을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 광복동에서 대학생들이 민주화와 독재 타도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경향신문 DB


경향신문 옛날신문을 찾아 부마항쟁의 흔적을 뒤져보았습니다. 계엄령 선포-진압-계엄해제-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시위 사흘째 계엄선포

 

197910181면 

                     정부는 부산지역 시위와 관련18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밤 10시부터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네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포고문 1>

1)일체의 집회. 시위. 기타단체활동을 금한다.

2)일체의 언론.출판.보도 방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한다.

3)각 대학은 당분간 휴교조치한다.

4)유언비어 날조. 유포와 국론분열 언동을 엄금한다.

5)정당한 이유없는 직장이탈이나 태업행위는 엄금한다.

6)야간 통행금지는 22시로부터 익일 새벽 4시까지로 한다.

7)이포고를 위반한자는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한다.

8)시민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일상생업의 자유 및 출입국 국내여행 등 활동의 자유는 이를 최대한 보장한다.

 

 

 

시위확산 마산에 위수령 발표


20일부터는 시위가 확산된 마산과 창원지역에 위수령이 추가 발표됩니다.

 

 

19791020일 1면  

< 마산 .창원 일원에 발표된 포고문 내용 >

"마산시 일원의 일부 학생과 불순분자들의 난동과 소요로 우리 군은 마산시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산시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한다."


시위진압 후 포고문 2호


공수부대의 시위진압이 마무리되자 계엄사령부는 야간통금 시간을 일부 해제합니다.

 

79년 10월 24일 1면 부산지구계엄사령부는 23일 하오 630분 부로 계엄포고 2호를 발표, 통금 환원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박정희대통령 서거  

 

7910271면 

박정희 대통령이 26일 밤 750분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만찬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으로 서거했습니다. 부마항쟁이 발생한지 열흘 만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62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