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김호기 칼럼]임시의정원 100주년을 기념하며

4월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조직이 ‘임시의정원’이었다.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의장에는 이동녕이, 부의장에는 손정도가 선출됐다. 임시의정원은 다음날인 11일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란 임시헌장 제1조는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임시헌장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으로 돼 있다. 이 규정은 임시의정원이 오늘날 국회가 맡은 역할인 입법 기능과 행정부의 견제 및 균형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임시헌장 제10조는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으로 규정돼 있다. 독립을 이루면 정식으로 국회가 될 것이기에 임시의정원에 ‘임시’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임시의정원이 기여했던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 임시헌법’의 제정이었다. 1919년 9월7일 임시의정원은 헌법 안을 국무원에 전달했고, 9월11일 국무원은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공포했다. 임시헌법의 제1장을 이루는 것이 ‘강령’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대한민국은 대한 인민으로 조직함.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 인민 전체에 있음. 제3조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 제국의 판도로 함.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일체 평등함. 제5조 대한민국의 입법권은 의정원이, 행정권은 국무원이, 사법권은 법원이 행사함. 제6조 대한민국의 주권 행사는 헌법 범위 내에서 임시대통령에게 맡김. 제7조 대한민국은 구황실(舊皇室)을 우대함.”


임시헌법에서 주목할 것의 하나는 ‘제4장 임시의정원’에 관한 규정이다. 헌법 제1조의 성립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박찬승의 저작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보면, 이 제4장 임시의정원 부분은 의원의 자격과 선출, 직권, 회의 등으로 이뤄져 있다.


구체적으로 임시의정원의 직권을 살펴보면, 법률안 의결, 예산 의결, 조세·화폐제도와 도량형의 준칙 의정, 공채 모집과 국고 부담에 관한 사항 의결, 임시대통령의 선거, 국무원 및 주외 대사·공사 임명의 동의, 선전(宣戰)·강화와 조약 체결 동의, 임시정부의 자문에 대한 회답, 인민의 청원 수리, 법률안의 제출, 임시대통령과 국무원에 대한 탄핵 등의 권리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임시의정원은 우리나라가 만든 최초의 근대적 의회, 다시 말해 국회인 셈이다.


임시의정원의 정신과 역할은 이후 대한민국 헌법에 연연히 계승돼 왔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제3장 국회’를 보면,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41조 1항은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시 말하면, 국회는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대의하며 대표하는 입법부라는 게 국회에 대한 헌법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국회는 오늘(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5당 원내대표들과 몇몇 국회의원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국회의 뿌리가 임시의정원에 있는 만큼 이 행사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민주주의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간의 견제 및 균형으로 활력을 갖는 정치체제라면,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은 국회 100년과 민주주의 100년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임시의정원 개원 100년을 바라보는 소회가 그렇게 편안하지 않은 게 나만의 느낌일까. 지금 국회는 과연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국회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개혁과 민생을 위한 입법일 터인데, 국회는 과연 이런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 걸까. 국민의 대의 기구임이 헌법에 명시돼 있는데, 국회는 국민의 대의 조직인가, 자신들의 대의 조직인가라는 의문을 품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1919년 4월10일로 돌아가면, 임시의정원이 출발한 그날 의장으로 선출된 이동녕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우리는 이제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이 나라에 민주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국민이 주인인 정치체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국회가 국민이 주인인 국회로서의 역할을 다해 주길 바라는 이 역시 나만은 아닐 것이다.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 정치사회학자의 감격과 소회를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