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홍길동전 원작자 논란

교양수신서 <명심보감>은 고려 말 추적(秋適)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새로운 판본이 발견되고 연구가 진척되면서 최근 명나라 학자 범입본(范立本)이 원작자로 부상하고 있다. <천자문>의 저자는 양나라 주흥사(周興嗣)다. 그가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하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위나라 종요가 <천자문>을 썼으며 뒤에 주흥사가 운을 달아 유포했다는 학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작자가 논란이 되는 고전은 더러 있다. 문헌에 작자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추적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술자와 채록자가 섞여 있는 경우에는 원작자를 확정하기도 어렵다. ‘공무도하가’는 한 여인이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은 남편(백수광부)을 위해 부른 노래이지만, 이를 채록한 이는 여옥이다. 백수광부의 처와 여옥은 모두 ‘공무도하가’의 작자다. 한문소설 ‘호질’은 연암 박지원이 연행길에 들른 가게의 벽면에 쓰인 문장을 베낀 것이라고 한다. 박지원의 말을 신뢰한다면 ‘호질’의 원작자는 중국인이다.


국문학자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가 홍길동 이야기를 담은 한문소설(황일호의 ‘노혁전’)을 찾았다면서 이를 근거로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허균 당대에 이미 한문소설이 등장할 만큼 홍길동 이야기가 민간에 전승되다 19세기 후반에 한글본이 쓰여졌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전에도 <홍길동전>에 숙종 대의 인물 장길산과 대동법의 선혜청과 같은 조선 후기의 관청이 등장하는 점을 들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이 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한국문학사는 새로 써야 한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허균 창작설’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허균이 쓴 한글소설이 한문소설로 개작됐을 수 있고, ‘장길산’이나 ‘선혜청’은 후대에 가필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홍길동전>의 작자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러나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택당 이식의 기록이 엄존한 데다 <홍길동전>의 내용이 허균의 사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허균 이외에 다른 작자를 찾기는 힘들다는 게 학계의 견해다.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님을 입증하려면 더 치밀한 논증이나 자료 발굴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