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미제(未濟)와 미생(未生)

며칠만 지나면 달력이 딸랑 한 장 남는다.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할 것인가. 계절의 끝자락에서 <주역(周易)>을 읽는다. 제1괘 건괘(乾卦)는 용이 점차 성장하는 모습이다. 제1효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용(潛龍)은 제2효에서 모습을 드러내고(見龍), 제4효에서는 간혹 연못에서 뛰어오르기도 한다. 급기야 제5효에서는 하늘로 비상한다(飛龍).

그러나 제6효에서 분위기가 일전한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이 난 용은 후회가 있다. 이카루스의 추락을 연상시킨다. 항룡유회에 관해서, ‘상전(象傳)’은 “가득 찬 것은 오래갈 수 없는 것(盈不可久也)”이라고, ‘문언전’은 “궁극의 재앙(窮之災也)”이라고 풀이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지나친 욕심이 사족을 그리는 어리석음일 수 있고, 후회막심한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주역 64괘


<주역>의 해석은 구구하다. 경문을 은말(殷末)·주초(周初)의 역사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 제1괘를 주나라 문왕의 일생으로, 제2괘를 무왕의 은나라 정벌로 해석하고, ‘항룡’은 문왕의 죽음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항룡유회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회한보다는 미완성의 아쉬움을 의미하고, 그 미완성은 다음 괘인 제2괘에서 달성하게 된다.

<주역>의 마지막은 제64괘 미제(未濟)괘이다. 괘사(卦辭)는 “어린 여우가 물을 건너다 꼬리를 적신다(小狐흘濟 濡其尾)”는 것이다. 완성이 아니라 뭔가 결함으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상전’에는 “군자는 이 괘상을 살펴 사물을 신중하게 분별하여 제자리에 둔다(君子以愼辨物居方)”고 풀이했다. 마지막 효사(爻辭)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으나,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은 있으나 바름을 잃게 되는 것(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이다. ‘상전’은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시는 것도 절제를 모르는 것(飮酒濡首 亦不知節也)”이라고 풀이했다. 마지막 괘에서 강조되는 덕목이 신중함과 절제이다.

드라마 <미생(未生)>이 화제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만약 미생이란 단어를 우리네 삶에 적용한다면, 완생(完生)보다 미생이 오히려 더 맞는 말일지 모른다. 완성을 향해 자강불식(自彊不息)하지만, 종국적 완성으로 종료되기보다 또 다른 시작을 낳으며 계속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냐, 9회말 역전이냐, 반집승이냐. 한 해 마감이 서서히 다가오는 때, 나는 <주역>을 이렇게 읽었다. 과욕·과음은 금물, 마무리는 신중하고 절제 있게!


김태희 | 실학네트워크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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