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한글과 엘리트

“나는야 조선 사람, 조선시 즐겨 쓰리(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라고 읊었던 다산 정약용이지만, 그의 시문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다. 독자가 처음부터 한자를 아는 지식 엘리트층으로 제한되었다. 다산의 형인 정약종은 천주교 해설서 <주교요지>를 썼는데, 순 한글로 되어 있다. 부녀자 등 일반 대중도 읽기 쉬웠다. 천주교 대중화의 길이었다. 담헌 홍대용은 중국에 다녀온 기행기로 한문본과 한글본 두 가지를 남겼는데, 예상되는 독자가 달라 그 내용이나 체제도 살짝 달라졌다.

한글이 발표되자 반대론자들은 중화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입각해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글을 오로지 국수주의나 반(反)엘리트주의 시각에서만 볼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다. ‘정음(正音)’이란 한자의 발음을 정확히 하는 것이다. 한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취지다. 실제 한글은 한문 습득을 위한 선행과정으로 활용됐다. 양반 자제들도 집안에서 서당에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습득했다. ‘훈민(訓民)’, 즉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다. 한글은 유교적 통치인 교화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당초 ‘어리석은’ 백성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단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나중엔 서민들이 정치적 반대를 할 때 한글을 활용하기도 했다.

담헌은 ‘여문헌서(與汶軒書)’에서 우리나라(東國)에는 따로 언문글자(諺字)가 있다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그 음은 있고 그 뜻이 없으며, 글자 수가 200이 안되지만 자모(子母)가 서로 어울려 1만개의 음을 갖춥니다. 부인과 서민,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언문글자를 함께 써서 바로 지방말로 글을 만들며, 간찰, 장부문서, 계약서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 순 한문(眞文)보다 혹 낫습니다. 비록 전아하진 않지만 그것이 깨우치기 쉽고 쓰기에 알맞아 인문(人文)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훈민정음 (국보 제70호) (출처 : 경향DB)


어려운 문자는 그것을 습득하는 데 이미 과도한 힘을 빼앗을 뿐 아니라, 소수만이 문자생활을 누리게 하고, 언어 인구를 1등 국민과 2등 국민으로 계층화한다. 한글은 담헌이 인식한 대로 도구적 실용성을 갖고 있었다. 부녀자와 서민들도 문자생활을 향유하게 했고, 부부 사이에 다정한 편지를 쓸 때도 활용되는 등 소통을 확대했다.

집단지성이 강조되는 오늘날이지만 엘리트주의의 폐해가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서민 친화적인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즉 소수 엘리트였다. 소수 엘리트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다중의 실용과 넓은 소통이 성취된 사실을 주목한다.


김태희 | 실학네트워크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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