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책만 읽는 바보

“남산 아래 한 바보(痴人)가 있었는데, 어눌해 말을 잘 못하고, 성격이 게으르고 둔하여 시무(時務)를 알지 못했다. 남들이 욕해도 따지지 않고, 칭찬해도 우쭐대지 않으며 오직 책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춥고 덥고 배고프고 아픈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되기까지 하루도 옛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중략) 사람들이 그를 보고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해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주는 사람이 없기에 붓을 들어 그 일을 써서 <간서치전(看書痴傳)>이라 하고, 그의 성명은 기록하지 않는다.” 바로 이덕무(1741~1793)가 자신에 관해 쓴 글이었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온 독서에 관한 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덕무에게 독서는 ‘힐링’이기도 했다. “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여 한갓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 조금도 더 살 생각이 없어진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이 있어 자못 글자를 아는지라 책 한 권을 들고 마음을 가다듬어 보노라면, 조금 지나 가슴속에 무너졌던 것이 어느새 안정이 된다.”


또 책 읽는 유익함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굶주린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갑절로 낭랑하여 그 이취(理趣)를 더 잘 맛보게 되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둘째, 좀 추워질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에 퍼져 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셋째, 근심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에 머물고 마음은 이치에 모여 천만 가지 상념이 일시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해 막힘이 없어져 기침소리가 갑자기 그치게 된다.”

편안한 상황에서도 결론은 역시 독서였다. “만약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배부르지도 않으며 마음이 화평하고 기쁘며 몸도 건강한데다 등불이 환하고 창이 밝으며, 책이 정돈되고 자리가 청결하면 독서할 마음을 누를 수 없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달리 무엇을 하랴.” 독서의 영향이 막대한 청소년기에 입시수험서가 아닌 책은 잘 읽지 않고 읽어도 수험용으로만 읽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 읽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도 오로지 하나의 정답으로 재단하는 입시와 오로지 출세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독서 때문이 아닐까. 연암 박지원은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혜택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이 만세에 드리운다”고 했거늘.

9월. 독서의 계절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마는 좋은 계절에 스스로 독서에 힘쓰고 청소년에게도 권면함이 어떨까.


김태희 |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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