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앉아서 천하를 안다

“방문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안다(不出戶 知天下)”란 말이 있다. 유득공의 글 ‘청령국지서(청령國志序)’는 이렇게 시작한다. “방문을 나가지 않고서도 사방 오랑캐의 사정을 아는 것은 독서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불가능하고, 독서를 해도 뜻있는 선비가 아니고선 역시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이덕무를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불렀는데, 유득공은 말했다. “아, 나의 작고한 벗 이덕무가 어찌 한갓 독서만 하는 사람이었다 하겠는가?”

규장각 검서관인 이덕무와 유득공이 왕명을 받아 역대 병지(兵志)를 편찬하게 됐다. 초고를 완성해 임금 정조를 뵈었더니, 임금이 말했다. “이제 중국과 우리나라의 병제를 알게 됐다. 그런데 여진·몽고·일본·유구(琉球)도 우리나라 남과 북의 이웃이 아니냐? 그 나라 군사 제도를 모르면 안된다. 너희가 편찬하여 바치도록 해라.”

물러나와 유득공이 이덕무에게 말했다. “내각(內閣)에 관련 책이 없을 텐데 어떡하죠?” “내가 가지고 있소.” 이덕무는 글상자를 뒤져 깨알같이 쓴 책을 찾아냈다. 북로(北虜)와 해외 여러 나라의 사정이 매우 상세했다. 마침내 가려 편집하여 책을 만들어 바쳤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노상풍정'. "사소절"의 저자 이덕무는 "길을 가는 모습과 하는 행동만 보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출처 : 경향DB)


하루는 담을 쌓는데, 한 일꾼이 “표류하여 일본 장기도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덕무가 아란타(阿蘭陀·네덜란드) 사람의 용모를 들어 따져 물었다. 일꾼은 깜짝 놀라 말했다. “공(公)은 언제 그 먼 나라에 다녀오셨는지요?”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이덕무가 앉아서 주변국 사정을 아는 것은 독서의 힘이었다. 그가 저술을 많이 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령국지> 두 권도 그런 결과다. ‘청령국’이란 일본을 가리키는데, 땅 모양이 청령(청령·잠자리)과 유사해 부른 별칭이란다.

“이덕무가 이 책을 편찬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에 따라 위황(僞皇)의 연대와 관백(關白)의 시말(始末)에서 산천(山川)·도리(道里)·풍요(風謠)·물산(物産), 그리고 서남쪽 여러 번(蕃)과의 왕래·교역에 이르기까지 사실에 근거하여 쓰지 않은 것이 없다. 고증과 조사를 정밀하고 상세하게 하여 풍문으로 들은 헛된 말은 없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읽으면 선린외교를 펼 수 있고, 국경을 넘어 일본에 가는 사람이 읽으면 그 나라를 엿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방문을 나가지 않고서 천하를 알고, 멀리 나갈수록 오히려 아는 것이 적어진다. 노자의 말이다. 외부의 견문이 도리어 인식을 방해하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독서가 전부도 아니고 양태도 다양해졌지만, 앉아서 천하를 아는 데는 풍부한 독서만한 것이 없다. 독서는 나의 힘!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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