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이순신이 그리워

영화 <명량>과 그 흥행이 화제다.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기대감은 100여년 전 구한말 지식인 매천 황현(1855~1910)의 시 ‘이충무공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시는 약 300년 전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거북선의 활약상을 통쾌하게 그리고 있다.

“전라 좌수영 남문을 활짝 열고/ 북소리 둥둥 거북선이 나가는데/ 거북인 듯 아닌 듯 배인 듯 아닌 듯/ 판옥(板屋) 우뚝 솟고 큰 포말 일으키네./ 네 발은 빙글빙글 수레바퀴 되고/ 양 비늘은 펴서 창(槍) 구멍 만들었는데/ 스물네 개 노가 물결 밑에 춤추고/ 노 젓는 수군은 앉았다 누웠다 귀신같네./ 코는 검은 연기 내뿜고 눈은 붉게 칠하여/ 펴면 용 같고 움츠리면 거북 같은데/ 왜놈들 우우 울부짖고 겁에 질려/ 노량 한산에 붉은 피 흘러 넘쳤네.”

일본과 서양의 함대가 해양으로부터 침략해오는 위기상황이었다. 다시 이순신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시의 끝부분이다. “죽은 충무공을 일으킬 수 있다면/ 주머니 속 기묘한 계략이 있을 텐데/ 새로운 지혜로 승리한 거북선처럼/ 왜인은 목숨 빌고 서양인은 사라지게 할 텐데(九原可作忠武公 囊底恢奇應有術 創智制勝如龜船 倭人乞死洋人滅).”

이 시를 쓴 해가 갑신년(1884년)이었다. 그해 김옥균을 비롯한 일군의 청년들이 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개화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걸었지만 방식은 구태의연했다. 우국충정은 열렬했지만 결과는 개화세력을 약화시켰다. 독립을 주장했지만 또 다른 외세에 의존했다. 민심과 동떨어졌고, 세계패권질서와 신흥 일본의 속성을 잘 몰랐다.

뒤이은 갑오년(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경장 등 개항 이후 여러 노력은 조선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세력들의 분투였고, 정치리더십을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엇갈려 정치세력은 분열되고 충돌했다. 외세에 휘둘리며 차례차례 각개격파당하고 말았다. 정치리더십의 형성은 그토록 어려웠다.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 정부 표준영정. 충남 아산 현충사 소장. (출처 : 경향DB)


경술년(1910년) 8월29일, 나라가 망한 그날 조선은 기이하게 조용했다고 한다. 저항할 만한 세력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리라. 매천은 글자 아는 사람(識字人)으로서의 책임감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갑오년 8월, 나라의 존망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다 아는 얘기일 텐데, 영화 <명량>에 관객이 넘치고 있다. 답답한 세상에 신묘한 방책을 기대하는 걸까,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소임을 다하는 리더를 그리워하는 걸까. 우리에게 배 12척뿐이랴마는.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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