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만리장성과 강녀 전설

만리장성에는 맹강녀 전설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강녀묘기(姜女廟記)’에는 이렇게 소개했다. “강녀(姜女)는 성이 허씨(許氏) 이름이 맹강(孟姜)이며, 섬서(陝西) 동관(同官) 사람이다. 범칠랑(范七郞)에게 시집갔는데, 진나라 장군 몽염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남편이 부역하다가 육라산 밑에서 죽었다. 남편이 아내 맹강의 꿈에 나타났다. 맹강이 손수 옷을 지어 혼자 천 리를 걸어 남편의 생사를 탐문했다. 두루 다니다가 여기서 쉬며 장안을 바라보며 울다가 이내 돌로 변했다고 한다.”

연암에 앞서 중국을 여행한 담헌 홍대용은 <연기(燕記)>의 ‘연로기략(沿路記略)’에서 강녀 사당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녀의 사당(貞女廟)은 산해관(山海關) 10리 밖에 있다. 들 가운데 작은 산록(山麓)이 갑자기 솟아나 흙과 돌이 섞여 돌빛이 푸르고 주위에 소나무가 둘러 서 있다. 벽돌을 쌓아 길을 만들었는데 수십 계단이고 돌난간은 조각이 자못 공교하다. 위에 있는 망부석(望夫石)은 높이가 1길(丈) 남짓하고 넓이는 7~8보(步)였다. 왼쪽에 약간 파인 곳이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정녀(貞女)의 발자국이란다. 사당 가운데는 정녀의 소상(塑像)이 있는데 시골차림으로 순박하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눈에 뒤덮여 있다. (출처:연합뉴스)


맹강녀 전설은 버전이 여럿이다. 담헌은 무엇보다도 송나라 문천상이 썼다는 한 쌍의 주련에 주목했다. “진시황은 어디 있나? 만리장성엔 원망이 쌓였네./ 강녀는 죽지 않아 천년 조각돌에 정절을 남겼네(秦皇安在哉 萬里長城築怨/ 姜女不死也 千年片石留貞).”

만리장성은 군사적으로 별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막강했던 진나라가 무너진 것은 외적의 침입 때문이 아니었다. 혹독한 부역을 견디지 못한 민초들의 반란에 의해서였다. 부귀영화와 영생을 꿈꾼 황제는 존재가 없고, 강녀는 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만리장성은 민초들의 죽음과 원망만 쌓았지만, 한 조각 돌은 강녀의 마음을 상징하여 세월이 흘러도 우리에게 진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필자의 아들이 얼마 전 신병훈련을 마치고, 약 30년 전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최전방 부대에 배속됐다. 사촌동생이 오래전에 군복무 중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이모 내외는 해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다녀온다. 그 슬픔은 강녀에 못지않을 것이다.

일본은 다시 전쟁의 길로 돌아가고 있다. 전쟁은 현장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 의해 너무 쉽게 일어나곤 한다. 그릇된 정치와 전쟁으로 인한 가족 이산과 사별의 아픔은 늘 민초의 몫이다.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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