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학교 일으키기

함양군 윤 사또가 고을의 한 정사(精舍)를 손질하여 ‘흥학재(興學齋)’라 이름을 붙였다. 자신의 녹봉도 보태 자금을 마련하고 서적을 비치했다. 안의현감 연암 박지원이 이 말을 듣고 ‘수령 칠사(七事)’를 상기했다. 칠사란 농상이 성하고(農桑盛), 호구가 늘고(戶口增), 학교가 일어나고(學校興), 군정이 정돈되고(軍政修), 부역이 고르고(賦役均), 소송이 드물고(詞訟簡), 간활이 사라지는(奸猾息) 것이다.

연암은 칠사 가운데 농상을 권면하여 생산을 높이고 호구를 늘리는 것이 급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수령이 먼저 해야 할 것이 ‘흥학(興學)’이라 여겼다. 연암은 지방 수령으로서의 책무를 크게 느껴, ‘함양군 흥학재기(咸陽郡興學齋記)’를 지어 벽에 걸어두었다.

‘흥학’이란 학교 또는 학문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입시공부가 학교의 주된 임무가 되어버린 오늘날 과연 무엇이 흥학일까? 일찍이 성호 이익은 과거시험 공부를 개탄했다. “지금 과거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은 성현의 말을 잡다하게 인용해 화려하게 문장을 짓지만 기실은 말과 일이 합치되지 않는다.” 떡 모양을 보고서 형용할 수는 있어도 떡을 먹어본 적이 없어 그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

창경궁에서 열린 조선조 과거시험 재현 행사.


성호는 진정한 학문에 대해 말했다. “대학(大學)의 도(道)는 크게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른다. 비록 유생이나 낮은 벼슬아치라도 그 문장을 외우고 익혀 치국(治國)은 어떻게 하고 평천하는 어떻게 하는지 잘 이해해서 그 방안을 준비하여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약 누가 물으면 가슴에 쌓아둔 것을 펼치는 데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바야흐로 올바른 학문이다.”

시무(時務)에 밝은 자가 드문 것은 왜인가? 성호는 답했다. “그 원인은 과거 공부가 마음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라는 것은 벼슬에 나아가길 탐하는 무리를 사방에서 모아, 오직 하나의 요행의 길만 열어두어 사람들에게 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미 실제 쓰임과는 정반대이다. 이와 같은즉 육경의 문장은 허황되고 화려한 글을 짓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그러므로 문장은 그럴듯하지만 실제 일을 물으면 답변하지 못한다.”

신분보다 노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는 제도적 진보였다. 그러나 과거공부의 한계와 폐단도 분명했다. 인재선발의 방식에 따라 학교와 학문이 왜곡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 문제를 따져보면, 학교 안에서 풀릴 것이 아니고, 모두를 한 줄 세우는 사회가 바뀌는 것이 우선일지 모른다.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에 도움되는 학문과 학교가 일어나는 흥학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옛글에서 읽는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리장성과 강녀 전설  (0) 2014.07.08
여의주와 말똥구슬  (0) 2014.06.24
재난구제  (0) 2014.05.27
애민(愛民)과 외민(畏民)  (0) 2014.05.13
자식 잃은 슬픔  (0) 201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