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섬과 바다를 노래한 ‘걸어다니는 물고기’ 이생진

윤동주는 하늘을 보고 별을 노래했다. 그는 바다를 보고 섬을 노래했다.

윤동주는 젊은 시절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그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등단을 했다.

이생진은 섬의 시인이다. 섬사람들은 섬에서 미역을 캤고 그는 시를 캤다.

그는 갯내 나는 충남 서산에서 나고 자랐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에 이끌려 섬을 찾아다녔다.




그는 해방 직후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섬 순례를 시작했다. 안면도가 첫 순례지였다. 거의 혼자 떠났다. 서울 보성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도 방학만 되면 등짐을 꾸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섬으로 돌아다녔다. 안면도 황도 덕적도 용유도 울릉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비금도 진도 흑산도 거제도 제주도 쑥섬 거문도….”

그는 자유롭게 섬에 가기 위해 1993년 평생을 일했던 교사생활을 접었다.

33년 동안 월급의 일부를 부인 몰래 섬기행 경비로 따로 모았다. 한달에 한 번은 섬에 갔다. 그리고 열흘을 섬에서 살았다. 정식으로 등단하기 14년 전, 자비로 출간한 첫 시집 <산토끼>부터 시집은 20여 권에 이른다. 대부분 섬과 바다에 관한 것들이다.

그는 하늘과 바다밖에 없는 곳에서 누리는 고독과 자유가 그리워 앉은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섬으로 떠났다. 때로는 절벽에서, 때로는 동백 숲에서, 때로는 등대 밑에서, 때로는 어부의 무덤에서, 때로는 방파제에서 바다를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는 섬이었다. 물 위에 뜬 섬이었다. 우리나라 섬은 무인도 500여개를 포함해 3200여개. 60여년이 넘은 섬 방랑 기행으로 1000여개의 섬을 떠돌았다. 거문도 수월산 절벽 위에 서 있는 등대와 만재도 해안이 그 중 아름다웠다. 제주도와의 인연은 한국전쟁 때 징병돼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에서 3년간 복무하면서다. 틈만 나면 제주섬을 누볐고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냈다. 그는 시집 첫머리에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시집에서 시를 읽지 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고독을 즐겼고 고흐를 흠모했다. 그래서 젊은들이 홀로 섬으로 떠날 것을 강권하다시피했고, 그곳에서 고독과 자유를 누려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흐의 사랑과 삶을 시로 썼다. 그는 “섬에서 무덤을 보았고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무덤과 대화했다. 사자(死者)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곧 시를 쓰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인의 머릿속에는 우리나라 섬들이 별자리처럼 박혀있다. 그에게 바다와 섬은 모두 꿈과 설렘이다. 그러나 진도의 팽목항은 눈물이다. 그는 세월호 침몰 후 팽목항을 찾아 ‘찔레꽃 흰 슬픔이 소나무에 매달려 운다’며 바다처럼 깊은 슬픔을 쏟아냈다.

‘올해는 많이 울었다/ 너도 울고/ 나도 울고/ 배도 울고/ 바다도 울고/ 4월부터 5월 달 내내 울다가/ 6월엔 현충일을 만나/ 더 울었다’(세월호 침몰 55일·2014년) 또 4월이 노랗게 찾아온다.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