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오직 당일(當日)

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무언가 하려면 오직 당일(當日)에 달렸다. 이미 지나간 날은 돌이킬 방법이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은 비록 3만6000날이 연이어 온다 해도, 그날엔 그날 마땅히 할 일이 각각 있으니 실제로 다음날까지 어떡해볼 여력이 없다.”


혜환 이용휴(李用休, 1708~1782)는 ‘당일헌기(當日軒記)’에서 내가 누리는 오늘 하루, 즉 ‘당일’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지나간 것은 뒤쫓을 수 없고, 오는 것은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정약용도 ‘어사재기(於斯齋記)’에서, “천하에 지금 누리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고 했다.


세월은 쉬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한가롭지 않아서 항상 운행하는데, 사람은 어찌 한가로움을 얻는가?” 하루는 자칫 작은 것이라 여겨 소홀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쌓여서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작은 것을 강조한 옛글은 많다. 


실학자 유형원은 <반계수록> ‘서수록후(書隨錄後)’에서 말했다. “천하의 이치상 본(本)과 말(末), 대(大)와 소(小)가 떨어진 적이 없다. 치(寸)가 잘못된 자(尺)는 자 구실을 할 수 없고, 눈금이 잘못된 저울은 저울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물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도 벼리가 제 구실을 하는 경우란 없다.”


작은 것의 중요성은 노자의 글에서도 강조된다. “천릿길도 발밑에서 시작한다”(도덕경 64장), “천하의 어려운 일도 쉬운 때 도모하고, 큰일도 작은 데서 이룬다”(63장).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쉬운 일, 작은 일을 하는데도, 결국 어려운 일을 해내고, 큰일을 이룬다.

(경향신문 DB)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이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루를 어떻게 지내느냐는 각자에게 달렸다. 


“당일 하는 바는 사람마다 똑같지 않다.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을 한다. 그래서 날(日)에 좋고 나쁨은 없고, 오로지 쓰는 사람에게 달렸을 따름이다.”


혜환은 다음과 같은 당부로 기문을 마무리했다. 


“이제 신군(申君)이 공부하고자 하는데, 그 공부는 오직 당일에 달렸으니, 내일은 말하지 말라. 아! 공부하지 않은 날은 생기지 않은 것과 같아 바로 공일(空日)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뚜렷이 빛나는 날을 공일이 아니라 당일로 만들게!”


어느새 2013년 계사년도 한 달 보름 이상이 지나가 버렸다. 이미 지난 걸 어쩌랴. 중요한 것은, 내게 빛나는 ‘오늘 하루!’가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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