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인재와 인재풀

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나라 다스리는 일은 사람 쓰기에 달렸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쓰자면 인재가 없다는 한탄이 따른다. 과연 그럴까?


“열 집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데, 넓은 천하에 어찌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가? 문제는 어진이가 스스로 나서길 꺼려 하고, 임금과 재상이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는 데 있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송사>를 읽다 한 말이다(<독사려측>). 그는 ‘인재설’에서도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천리마를 알아볼 사람은 항상 있지 않다”는 당나라 한유(768~824)의 말을 상기시켰다.


인재는 얻고 쓰는 사람에 달렸다. 한신은 항우가 몰라봤지만 한나라 소하가 알아보고 붙잡았다. 이순신은 서애가 알아보고 천거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 알아보고 기용했다. 인재는 발탁하고, 없으면 배양해야 한다. 그나마 경쟁이 치열할 때는 적극적으로 인재를 구하다가도, 그런 상황이 사라지면 그저 서로 편한 사람들끼리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인재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통색의’에서 말했다.


(경향DB)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인재를 얻기 어려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빼어난 인재를 모두 발탁해도 부족한데, 더군다나 8, 9할을 버리다니요? 온 나라의 백성을 모두 배양해도 인재가 자라지 않을까 걱정인데, 더군다나 8, 9할을 버리다니요? 서민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중인과 서얼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평안도, 함경도 사람들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황해도, 개성, 강화도 사람들이 버려진 사람들이고, 강원도와 호남 사람들은 절반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북인과 남인은 버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버려진 것과 같습니다. 버리지 않은 사람은 오직 문벌 좋은 수십 가문뿐입니다.”


노론이 지지한 영조가 즉위했다.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과격파 소론이 주동한 반란이 일어났다. 간신히 진압했는데, 온건파 소론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영조가 조정에 노론만 남기고 소론을 모조리 몰아냈었다면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을까. 영조는 노론만의 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왕이 되고자 했고, 이는 탕평책의 배경이 되었다.


영조를 이은 정조는 탕평과 대동을 실천했다. 능력 있는 서얼을 발탁해 기용하고, 비주류인 소론과 남인의 인재를 보호하고, 영남과 서북 등 소외된 지역의 인재를 격려했다. 그러나 정조가 죽은 후, 몇몇 문벌이 조정을 독차지하고 이른바 세도정치가 전개되었다. 이후 나라가 어찌되었는지는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인재가 없다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재풀이 적다고? 인재를 찾기는커녕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옛글에서 읽는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협(義俠)  (0) 2013.03.15
3의 마력  (0) 2013.03.03
오직 당일(當日)  (0) 2013.02.17
이익의 당쟁 해법  (0) 2013.02.03
보고도 속는 까닭  (0) 201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