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특검도, 특감도 “한계” 곱씹은 이석수

“민정수석도 감찰 대상이다. 명백한 비위 행위가 포착되면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특감)이 지난해 3월24일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친족이나 고위공직자의 ‘특별감찰반’을 가동할 수 있는 민정수석실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질문이 꼬리를 문 자리였다. 1년 뒤 맞닥뜨릴 운명을 내다본 말이었을까. 이 특감은 “만약에 숨길 게 있어서 (감찰 대상자가) 거부한다면 수사의뢰가 갈 수 있는 것”이라며 “그 정도 고위공직자가 수사의뢰가 됐다면 그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계좌추적·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권은 없지만, “특별감찰관 권한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수사의뢰’ 칼을 내비친 것이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이 특감은 지난 18일 우병우 민정수석을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러나 1년5개월 전 예상의 반은 빗나갔다. “수사의뢰되기 전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자료제출이나 조사에 협조할 것”이라던 말은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경찰이) 꼼짝도 못해”라는 탄식으로 남고, 의경 보직 특혜 의혹에 휩싸인 우 수석 장남은 조사를 거부했다. “수사의뢰가 세상에 알려지면 직책을 온전히 수행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도 엇나갔다. 외려 이 특감은 신문기자와 나눈 대화가 ‘감찰 유출’ 시비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문제 삼은 국면이다.





그는 유독 ‘특’자와 인연이 깊다. 경향신문에 그의 얼굴이 처음 등장한 것도 2012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로 활동할 때(사진 붉은 원)였다. 그는 대통령의 아들을 “피의자”로 부르며 직접 조사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을 기소(배임)하는 성과도 냈으나, 특검이 요구한 ‘15일 연장’은 대통령이 거부했다. 특검팀은 “진실을 밝힐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는 클로징 코멘트를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특검보 때 절감한 ‘수사의 한계’를 특별감찰관 때 곱씹은 셈이다. ‘이석수 검사’가 나오는 첫 기사는 1989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초임 검사 때 ‘룸카페 심야영업 주인 첫 구속’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 후 22년의 검사 생활은 북풍(1998)-조폐공사 파업 유도(1999)-김선일 테러(2004) 같은 공안수사, 대검 감찰1·2과장,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 검찰팀장(2005)의 세 묶음으로 채워졌다. 청와대는 그런 그를 지난해 3월 “첫 특별감찰관 적임자”로 낙점하고, 1년 만에 국기를 흔든 중대 위법자로 내몰았다.


내곡동 사저 특검을 지낸 이광범 변호사는 이 특감의 우 수석 감찰에 대해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본인이 죽는다는 걸 잘 알기에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인’을 ‘특별감찰관’으로 치환해도 비슷하게 들린다. 법으로 보장된 3년 임기도, “저와 제 주변부터 더욱 엄격히 다스리겠다”며 시작된 박근혜표 특감 제도의 운명도 기로에 섰다. 특감의 존폐는 검찰 개혁을 당기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초심을 잊으면 되풀이되는 게 역사다.



이기수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