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어제의 오늘

2000년 소설가 황순원 타계

윤민용 기자

ㆍ이념 벗어난 순수문학 대표 작가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한국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로 꼽히는 <소나기>. 간결한 문체, 서정적인 분위기에 아련한 첫사랑의 서사를 담아낸 소설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국민 소설’로 거듭났다.

“소설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킨 언어미학의 장인”으로 꼽히는 작가 황순원은 1915년 3월26일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와 바이올린 교습을 받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보낸 그는 평양 숭실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잡지 ‘동광’에 시 ‘나의 꿈’으로 등단한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시작활동을 하다 1936년 단편 <거리의 부사>를 발표한 이후 소설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50여년간 작품활동을 하며 시 104편, 단편소설 108편, 중편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을 발표한 황순원은 해방 이후 남한 문단에서 순수문학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순수문학에 대한 황순원의 열정 역시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산물이다. 해방 이후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급진 개혁에 반발해 월남했지만 좌익적 성향의 소설을 발표하다가 1949년 이른바 ‘보도연맹’에 가입해야만 했다.

작가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그는 이후 작품에서 역사적 배경을 제거하고 현실과 거리를 둔 채 동화와 같은 순수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묘사했다. 문학작품 속에 좌우이념이 대립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인간의 섬세한 내면세계를 묘사하면서 지극한 서정성을 보여준 단편 <학> <목넘이 마을의 개> <소나기> 등의 대표작을 이 시기에 발표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장편 <카인의 후예> 등을 통해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이 마주치는 실존적 고뇌를 다룬 작품을 내놓았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개작(改作)했다. 단편소설 중 절반 이상을 개작했고, 또한 시와 소설 이외의 글은 일절 쓰지 않았으며 심지어 언론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따른 현실에 대한 환멸과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문학에의 열정을 더욱 불태웠던 한국문단의 거목 황순원은 이후 경희대에 근무하며 소설가 전상국, 조세희, 한수산, 고원정, 시인 이성복, 정호승 등 중견 문인들을 지도했다. 1985년 산문집 <말과 삶과 자유>를 펴낸 이후로는 이따금 시를 발표할 뿐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추석연휴가 끝난 다음날인 9월14일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