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3)-2 “이제 와서 좌·우가 무슨 소용” 맞잡은 두 손

ㆍ전남 다도·구림 마을

김진우기자



전남 나주시 다도면 주민들은 지금 작지만 의미있는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음달 하순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리는 위령비 건립식을 갖기 때문이다.




이 위령비는 특히 좌·우 구분없이 희생자 모두를 기린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위령비 상석(床石)에는 ‘화해’를 상징하기 위해 계수나무 잎 안에 맞잡은 두 손의 모습이 새겨졌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다도면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전후로 133명이 군과 경찰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116명이 좌익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유족들이 처음엔 “서로 원수간”이라 꺼리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상처만 덧나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취지를 설명하고, 2005년 좌·우 희생자를 아우르는 유족회를 결성했다.





위령비 건립 취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마을뿐만 아니라 외지에 있는 유가족들에게까지 보냈다. “고맙다”고 돈을 보내는 이들이 나오면서 성금이 1000여만원 모이기도 했다.



홍기축 다도양민희생자유족회 회장(62)은 “2006년 진실규명 이후 매년 합동위령제를 진행해왔다”며 “귀신들에게 좌·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홍 회장의 아버지와 숙부는 한국전쟁 당시 좌익 세력에 희생됐다.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다도면의 경우처럼 화해·위령사업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화해·위령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남 영암군 구림마을도 2006년부터 좌·우 희생자를 기리는 구림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1억원 가까이 드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구림위령비건립추진위 정석재 사무국장(62)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올해 끝나는 등 이 정부 들어 이런 일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예산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도면도 나주시로부터 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위령비를 건립했지만 화해·위령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홍기축 회장은 “유족회의 힘만으로는 위령제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금 정부에서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